최적의 답 제시하지만 최선의 영향 살펴야

신뢰 얻는 투명한 설명·사회적 수용성 중요

질문 던지고 기준 세우는 일 여전히 사람 몫

유용철 경기도 감사위원회 계약심사과장
유용철 경기도 감사위원회 계약심사과장

며칠 전 같은 조직의 한 동료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은 보고서 초안도 AI가 만들어주는데, 우리는 무엇을 더 잘해야 할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단순한 기술 도입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업무의 효율은 높아지고 있지만 그만큼 사람의 역할과 행정의 의미는 다시 질문받고 있다.

인공지능(AI)은 이제 문서 작성, 자료 분석, 민원 서비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행정을 보조하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가능성 높은 답을 제시하는 능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동시에 한 가지 사실도 함께 마주하게 된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시민의 삶과 제도 속에 담긴 복잡한 현실,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불균형까지 완전히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행정은 본질적으로 ‘사람의 삶을 다루는 기술’이다. 그래서 행정의 문제는 숫자나 문서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같은 정책이라도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되기도 한다.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더라도 나타나는 결과는 같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행정의 진정한 가치는 정보를 처리하는 효율성에 머무르지 않고, 정책과 제도가 시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이해하는 데서 드러난다. 요즘 다시 읽는 행정학의 이론들 속에서도 분명해지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행정은 단 하나의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사회의 더 나은 균형을 모색하는 역동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실제 행정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보게 된다. 같은 지침이나 같은 데이터라도 해석과 적용 방식은 다르다. 어떤 이는 규정의 정확성에 집중하지만, 다른 이는 현장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먼저 떠올린다. 결국 행정의 완성도는 기술적 정확성뿐 아니라, 시민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체감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공공성을 지키는 윤리와 시민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행정은 단순한 사무 처리가 아니라 공적 책임을 전제로 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타인을 대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결정이 만들어낼 결과를 끝까지 고심하는 것, 그것이 행정의 기본적인 기준이다. 신뢰는 정확한 정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그 정보를 다루는 방식 속에서 형성된다.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답’을 제시하지만, 행정은 그 답이 사회에 미칠 ‘최선의 영향’을 함께 살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효율만이 아니라 시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투명한 설명과 사회적 수용성이다. AI시대의 행정은 결정의 속도보다 정당성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기술이 속도를 높여도 정당성을 대신할 수는 없으며, 결정이 빠를수록 가치와 영향에 대한 행정의 책무는 더욱 막중해진다.

앞으로 행정의 역할은 점점 더 복합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능력보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능력, 정해진 답을 도출하는 능력보다 현장의 맥락을 해석하는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의 삶을 구조적으로 통찰하는 공감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 행정은 제도로 존재하지만 그 제도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아무리 시스템이 정교해져도 시민의 삶을 이해하고 그 삶 사이의 차이를 조정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행정은 그저 차가운 제도와 메마른 형식에 머물 뿐이다. 반대로 기술적 수단이 부족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이해와 책임 의식이 살아 있는 행정은 더 높은 신뢰를 만든다.

기술의 발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행정은 기술과 경쟁하기보다 기술이 보지 못하는 그늘진 영역을 더욱 정확히 바라보아야 한다. 시민의 삶을 끝까지 상상하려는 노력, 서로 다른 조건을 가진 사람들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감각,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려는 태도는 어떤 시대에도 대체되기 어렵다.

AI시대 행정에서 더 중요한 것은 기술 활용능력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따뜻한 정책의 언어로 바꾸고 그 결과까지 감당하는 판단의 능력이다. AI는 더 빠른 답을 줄 수 있지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기준으로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사람, 그리고 행정의 몫으로 남아 있다.

/유용철 경기도 감사위원회 계약심사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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