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국가들의 헌법은 주권재민, 삼권분립의 기본 골격을 공유하지만, 나라마다 특별한 헌법정신을 명시한 조문으로 고유해진다. 헌법의 역사적 배경이 달라서다. 미국은 수정헌법 제2조에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시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규정했다. 개인의 자유와 주(州) 자치권에 기반한 연방제 역사의 산물이다. 일본 헌법 9조는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고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고 선포했다. 원자폭탄 피폭과 세계대전 패배라는 역사적 트라우마의 결과다. “인간의 존엄은 침해될 수 없다”는 독일 헌법 1장 1조 1항은 나치 시대에 대한 국가와 국민의 반성이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은 1987년 군부독재 종결을 위한 국민 저항의 결과다. 국민은 대통령 직선제 쟁취에 연대했고 87년 9차 개헌으로 주권재민과 삼권분립의 헌법을 복원했다. 여야는 어떤 형태의 장기집권도 부정하는 국민열망을 ‘직선 대통령 5년 단임’으로 87헌법에 못 박았다.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는 헌법 128조 2항이다.

하지만 이 항목은 전두환이 1980년 대통령 발의로 8차 개헌한 5공 헌법의 개헌 항목과 동일하다. 5공헌법과 87헌법의 헌법개정 3개 조항이 완벽하게 일치한다. 쿠데타와 비상계엄으로 대통령에 오른 전두환은 7년 단임제로 민심을 무마했고, 헌법이 정한 임기를 지키고 물러났다. 87헌법이 현직 대통령의 임기 연장 및 중임 의지를 원천봉쇄한 5공헌법을 그대로 차용한 것은, 조문의 완결성과 불가역성 때문이었다.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은 국민의 선택”이라는 조정식 국회의장의 29일 발언이 정쟁으로 비화됐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우원식 전 의장이 강력하게 개헌 드라이브를 걸자, 현직 대통령 연임론이 불거졌다. 대통령 본인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부인했지만, 법제처장은 “국민이 결단할 문제”라 밝혀 논란이 됐다. 이번에도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이 ‘연임 제한 불가능’을 확인했지만, 공소취소의 대안이라는 둥 별별 억측이 난무한다.

개헌도 현행 헌법 ‘제10장 헌법개정’의 조항을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 현직 대통령의 연임·중임은 불가능하다. 다수 여론으로 가능하다는 해석은 대통령 사람들의 정치적 욕망이다. 대통령 생각이라 오해하기 십상이다. 대통령만 곤란해진다. 헌법을 간보면 안 된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