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물 탈 돈도 없다.” “파랗게 질린 주식창 열어보기도 무섭다.” 요즘 주식 커뮤니티에 넘쳐나는 개미 투자자들의 하소연이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앞둔 이들이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그런데 이는 최근 한 달 사이 개미들의 심리와도 닮아 있다. 지수가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일시적 조정일 것이라며 애써 부정했다. 낙폭이 커지자 시장과 당국을 향해 분노했다. 반등을 기대하며 물타기로 버티는 타협의 시간을 지나, 손실이 불어나자 무기력한 우울에 잠겼다. 결국 계좌를 정리하고 시장을 떠나겠다는 ‘주식 퇴학’을 결심한다. 서글픈 건 담담한 수용이 아닌 패닉 상태의 ‘백기투항’이다.

코스피는 오르내림이 극심해 ‘롤러코스피’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사상 첫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에 이어 30일에는 5천600선마저 무너졌다. 한 달여 사이 고점 대비 낙폭은 40퍼센트에 달했고, 2천800조 원 이상 사라졌다. 지난해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2천677조 원)을 웃도는 돈이 증발한 것이다.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반도체 대장주조차 주가가 곤두박질치면서, 실적과 주가가 따로 노는 현실에 허탈감이 커졌다. 더 뼈아픈 건 하락할 때마다 저가 매수로 시장의 버팀목이 되어주던 개인들이 손절매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역발상 투자를 포기했다는 것은, 공포가 시장에 대한 믿음을 삼켜버렸다는 증거다.

뒤처질까 두려워 뒤늦게 올라탄 ‘포모(FOMO)’와 발을 담그지 않아 안도한 ‘조모(JOMO)’의 희비교차다. 시장의 심리는 늘 극단을 오간다.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라. 주식과 결혼하지 말라’는 격언도 절제와 인내가 필요해서 생겨났을 테다. 이번 폭락사태는 개인의 심리만으로는 해석이 안 된다. 투자자가 진짜 믿는 건 눈앞의 숫자보다 시장의 회복력이다. 믿음이 있어야 폭락장에서도 매수 버튼을 누를 수 있다. 개인이 손을 놓는 순간, 투자자 예탁금은 눈에 띄게 줄고 손절매 도미노가 나타난다.

그런데도 정작 폭락 앞에서 금융당국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뒤늦게 레버리지 ETF 한도를 조이는 사후약방문식 대책을 내놨을 뿐, 투자자를 붙잡아 둘 신뢰의 안전판은 없었다. ‘주식 퇴학’ 손절 버튼과 함께 내던져진 것은 금융당국을 향한 마지막 신뢰다. 지수는 시간이 흐르면 제자리를 찾겠지만, 한번 무너진 신뢰는 힘겹고 더디게 회복된다. 국가도 제도도 못 믿게 된 개미들은 각자도생에 내몰렸다. ‘주식 퇴학’이 시장에 대한 ‘신뢰의 상장폐지’로 굳어질까 걱정이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