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국 前 청와대 행정관
이용국 前 청와대 행정관

국가교육위원회가 ‘학교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안)’을 공개하고 이달 31일까지 국민 의견을 받는다.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5·18 조롱 응원이 남긴 숙제다. ‘강제성의 금지’, ‘논쟁성의 유지’, ‘정치적 행위 능력의 강화’ 등을 골자로 한 독일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조롱과 비하를 인간 존엄을 침해하는 반시민적 행위로 못 박고, 논쟁적 사안을 교실 밖으로 밀어내지 않고 토론 주제로 삼되 교사의 정당한 지도를 법으로 보호하겠다는 방향은 옳다.

다만, 한 가지가 비어 있다. 아이들은 몰라서 그렇게 외친 것이 아니다. 배재고 응원 사건 직후 전교조가 청소년 1천636명에게 물었더니 80.6%가 그런 조롱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반면 교사 1천109명 중 열에 아홉은 최근 1년 사이 학생들에게서 혐오·차별·역사왜곡 표현을 접했고, 중학교 교사는 92.7%에 달했다.

옳고 그름은 알지만 남의 슬픔이 제 몸을 통과해본 적은 없는 상태, 그것이 지금의 대한민국 교실이다. 지식은 넣었으나 경험을 넣지 못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겪는 것 사이의 간극은 입시를 염두에 둔 토론 수업 한 칸을 늘려서는 메워지지 않는다.

한강 작가는 지난 15일 아비뇽에서 “충격이 또 다른 충격을 덮어 쓸려가 버리는 건 좋지 않다”고 했다. 자신의 소설 낭독 공연을 두고 “책을 읽는 것이 혼자만의 고독하고 개인적인 경험이라면, 공연을 본다는 것은 사람들과 함께 모여 누군가의 목소리와 몸짓, 표정을 같이 감각하고 공유하는 경험이다”라고 말했다.

공감은 설명으로 주입되지 않고 함께 겪는 시간에서 자란다는 뜻이다. 혐오를 놀이의 형식으로 배운 세대라면, 공감도 놀이의 형식으로 되돌려주어야 한다. 스코틀랜드는 2008년 최빈곤 지역 래플록에서 ‘빅 노이즈’를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방과 후 주 4회 안팎의 무료 오케스트라를 열어주는 방식이다. 글래스고 건강연구소가 10년에 걸쳐 추적한 결과 정서적 안정과 또래 관계, 출석률이 함께 좋아졌다.

원류인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는 성과 홍보에 치우쳐 실증이 부족하고 훈육이 권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차이를 만든 것은 취약지역 밀착과 상시성, 10년 단위 종단평가, 그리고 문화예산을 보건·복지 예산과 묶어 편성한 설계였다. 영국 축구의 ‘킥 잇 아웃’과 ‘쇼 레이시즘 더 레드 카드’는 현역 선수가 직접 학교를 찾아 워크숍을 연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식 캠페인만 반복한 기간에는 차별 신고 건수가 오히려 해마다 늘었다. 리그 징계 규정과 교육 프로그램을 한 묶음으로 운영하고, 가해자가 아니라 지켜보던 다수를 대상으로 삼았을 때 비로소 차별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우리도 출전 정지 징계 하나로 끝낼 일이 아니다. 경기장에서 자란 혐오는 경기장의 관계와 규칙 안에서 되돌려야 한다.

방법은 있다. 첫째, 국가교육위원회 교육활동 원칙에 ‘협동 체험’을 명시하고 2027학년도 창의적 체험활동에 학급 단위 공동창작·공동경기를 월 1회 이상 배정하는 것이다. 둘째, 문체부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에 ‘함께 겪는 창작’ 트랙을 신설해 공감 척도를 관찰하고, 사전·사후 측정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셋째, 전국 130여 개 지역문화재단이 교육청과 협약해 방과 후 상설 극단과 앙상블을 운영하고, 가능하다면 첫해 사업으로 서울·광주 각 10개교 청소년의 공동창작과 상호 초청 공연을 여는 것이다.

조롱이 오갔던 두 도시의 학생들이 한 무대에 서는 그림만큼 강한 메시지는 없다. 작가 한강은 혐오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 자체에 희망이 있다고 했다. 인식은 이미 도달했다. 남은 것은 아이들에게 타인의 슬픔을 함께 겪을 시간과 무대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그 시간을 끝내 주지 못한다면 이번 충격도 다음 충격에 덮여 조용히 쓸려갈 것이다.

사라지고 있는 것은 초등학교의 운동회나 수학여행만이 아니라, 서로 같이 만들어 가는 공감의 무대와 타인에 대한 이해이다. 무너진 선을 되돌리는 일은 결국 아이들이 사람을 겪게 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용국 前 청와대 행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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