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은 정류장… 웃음과 사랑이 머물다
양국 배우들 한 무대서 뜨거운 호흡 맞춰
도망자·사랑의 종말… 현실·죽음 너머 서사
재치있는 대사·행동으로 완성한 공연 묘미
이미 작품은 시작된 것일까. 조명이 약하게 켜진 무대 위에는 버스정류장 표지판과 평범해 보이는 벤치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부터 무대에는 묘한 긴장감과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어느순간 암전, 그리고 조명이 켜지고 배우들이 등장하며 한국과 일본 배우들의 열연이 펼쳐졌다.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1일까지 인천 문학시어터 무대에서 연극 ‘정류장, 두 개의 이야기’가 관객 앞에서 선을 보였다. 이번 작품은 인천의 예술단체 ‘씨어터 미르(Theatre M.I.R)’와 이들의 특수관계이자 일본의 형제 극단인 ‘씨어터 아트만(THEATRE ATMAN)’이 손을 잡고 선보인 한·일 합동 공연이다. 두 극단이 지속해 온 국제 협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한국어와 일본어라는 서로 다른 두 언어가 두 나라 배우들에 의해 어떻게 하나의 작품에서 무대화가 가능할 것인지 기대와 궁금증을 갖고 극장을 찾았다. 지난 30일 공연을 감상했다. 한국 배우의 한국어 연기 뒤에 일본 배우가 일본어로 대사를 받아치는 장면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국적과 언어가 다른 배우들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관객이 이를 감상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언어나 국적은 무대 위에서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한국 관객을 위한 무대인 만큼 일본 배우가 연기할 때는 무대 뒤편으로 한국어 자막이 송출됐으며, 추후 일본 무대에 오른다면 반대의 방식으로 소화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재상 작·연출로 펼쳐진 이번 작품은 정류장이라는 하나의 공간, 하나의 무대를 배경으로 단막극 형식의 두 가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첫 작품은 ‘도망자’이며 두 번째 작품은 ‘사랑의 종말’이다. 현실 세계의 버스 정류장과 저 세상으로 향하는 길목의 정류장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의 차이가 있다. 각자의 삶을 간직한 사람들이 정류장에서 만난다. 선택에 따라 바뀌는 인간의 운명, 그리고 양면성을 가진 사랑, 그리고 희망, 이들 키워드가 서로 상호반응을 일으키는 ‘유쾌한 블랙코미디’다.
극의 재미를 느끼려면 빠르게 흘러가는 배우들의 대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작품은 ‘말’의 의미, 그 진정성이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도망자’에서는 의미 없이 가볍게 내뱉은 ‘청년’(유무선 분)의 말을 다시 주어 담아 다시 화자에게 던지며 다시 질문하며 결국 주인공의 행동의 변화까지 일으키는 극중 ‘순실’(김지수 분)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청년의 부정확한 표현을 되받아 공격하는 ‘노인’(양창완 분)의 연기도 쾌감을 준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을 떠올리게 할 만큼, 서로를 향한 선택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엇갈린 결과를 낳는 찰나를 그려낸 ‘사랑의 종말’의 이야기도 무척 인상적이다. ‘중년남자’를 양창완이, ‘여인’을 시미즈 쿠미(Shimizu Kumi)가, ‘청년’을 코모리 사토시(Komori Satoshi)가 맡아 연기했다.
이재상 연출은 “버스 정류장에서 벌어지는 유쾌하고 따뜻한 두 개의 이야기를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만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류장이라는 두 공간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유쾌한 웃음과 함께 삶의 선택, 그리고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전했다.
인천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이번 공연은 오는 8월 5일부터 9일까지 서울 대학로 드림시어터에서 관객과의 만남을 이어갈 예정이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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