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론과 국민 선택의 문제’
조 의장 ‘연임 개헌’ 발언 논란
헌법, 다수 의사를 반영하지만
개인 이익 위해 바꿀 수는 없어
지난주에 조정식 국회의장이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연임 개헌 가능성에 대해 ‘국민 여론과 국민 선택의 문제’라는 발언을 해서 큰 논란이 일었다. 다음날 대통령 임기와 관련된 개헌은 불가능하다고 말을 바꿨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이번 사태는 단지 한 정치인의 실언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되묻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특히 국민주권을 말하면서도 헌정질서의 한계를 함께 고려하지 않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번 논란을 보면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가 국민이 선택하면 무엇이든지 가능한 체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를 가장 단순하게 정의 내리면 ‘다수의 지배’다. 그런 점에서 다수 국민이 원한다는 전제 아래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헌법은 다수의 의사를 반영하는 제도이면서 동시에 그 다수의 열정이 공동체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제동을 거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헌법개정은 가능하더라도, 그것이 언제나 정당한 것은 아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국민주권 정신을 정치 현실에 반영하는 데 있어서 신중할 것을 주문한다. 유신헌법도 나치의 등장도 모두 국민의 동의와 선택에서 비롯되었다. 길게 보면 국민은 정의를 향해 가지만 그 가는 길이 항상 일직선인 것은 아니다. 일시적인 열정과 분위기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할 여지는 항상 있다. 그래서 헌법과 제도가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변경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충실한 태도다.
이번 논란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현직 대통령의 임기와 관련한 개헌을 국민 여론에 맡길 수 있다는 듯한 인식이었다. 하지만 헌법은 국민의 여론을 등에 업고 권력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손쉽게 바꿀 수 있는 규범이 아니다. 대통령 임기와 관련된 미국 수정헌법 22조가 현직 대통령에게 적용을 유보한 것도 권력자가 자신의 재집권을 위해 개헌을 주도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다시 말해, 입헌민주주의는 국민의 선택을 존중하되 권력자가 그 선택을 권력의 연장 도구로 삼지 못하도록 설계된 체제다. 헌법개정이 가능하다는 사실과 그 개정이 언제나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따라서 한 단계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국민이 원하면 가능한가’를 넘어서 ‘국민의 의사가 헌법이 지키려는 자유와 권리를 훼손하지 않는가’를 되돌아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뜻을 반영하지만, 다수의 뜻이 곧 정의는 아니다.
그래서 헌법은 다수의 선택을 허용하면서도 권력의 자기 증식을 막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 권력을 제한해야 할 대상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 자신이기도 하다.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다. 국민의 선택을 절대화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오히려 자신의 기반을 허무는 방향으로 기울 수 있다.
그래서 ‘국민 여론과 동의’를 자주 언급하는 정치인은 오히려 경계할 필요가 있다. 물론 국민의 뜻을 듣고 존중하는 것은 정치의 기본이다. 그러나 때로는 국민이 동의할 사안이라도 정치인은 그것이 헌법적 원리와 충돌하는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 여론을 좇는 일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동일하지 않다. 책임 있는 정치인은 둘 사이의 긴장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국민을 앞세워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요구 앞에서도 제도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정치인의 자세다.
민주주의를 국민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체제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고 위험하다. 권력의 분산과 제한을 소홀히 하면 민주주의인 듯 보이지만 실제는 민주주의가 아닌 정치로 퇴화할 수 있다. 국민 여론과 선택을 앞세우기보다는 국민주권을 헌법적으로 책임 있게 해석하고 실천하는 정치인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다.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