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진학서 네 소녀 ‘야생 우정 어드벤처’
“미래가 불확실해도 괜찮아”… 청춘 위로
인천영상위위원회 제작·유통 지원 결실
“근데 걔네(산양)는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서든 잘 수 있대…걔네 절벽을 막 뛰어다니더라, 우리 이름 산양들로 하자!”
인혜(박혜진 분)·서희(이승연)·정애(박효은)·수민(최수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4명의 여고생은 자신들만 아는 숲속 어딘가에 아지트를 꾸몄다. 철거 위기에 놓인 학교 사육장의 오리·토끼·닭을 지켜내겠다는 목적 하나로, 그렇게 소녀들의 저항이자 반란이 시작된다.
산양은 높은 바위산 절벽을 평지의 길처럼 다닐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특수하게 진화한 발굽과 발바닥 구조 때문에 험한 바위산이나 가파른 절벽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다른 동물이 다닐 수 없는 곳을 터전으로 살며 맹수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살아간다.
유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산양들’은 “외톨이 소녀 네 명이 야생에서 자신들만의 안식처를 만들고, 소동물 구출 작전에 뛰어들며 벌어지는 야생 우정 어드벤처”다. 지난 2일 인천의 한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했다.
진로 지도 교사의 강제 호출이 있기 전까지 서로 아무런 교집합이 없던 네 소녀의 공통점은 딱 하나다. 진학조사서 빈칸에 아무것도 채우지 않고 백지를 제출했다는 것. 남들은 별 깊은 고민 없이 쉽게 쉽게 들어가는 대학인데, 이 소녀들은 퍽 진지해서 아무렇게나 대학을 가는 것이 결코 쉽게 내키지 않는 일이다. 길고 긴 인생길을 정확히 어떤 방향으로 놓아야 할지 아직 찾지 못했다.
교사는 “미래에 대한 생각이 없으면 동물”이라며 “혹시 내가 특별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하나도 안 특별한 아이들”이라고 소녀들을 다그친다. 그러나 “면접만 잘 봐도, 너희 같은 애들도 붙여주는” 수 많은 대학에 무작정 들어가는 것은 소녀들의 방식이 되기 힘들었다.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소녀들이 어설프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영화는 이들이 불안함과 어설픔을 스스로 극복하고 차근차근 성장해 가는 과정을 따뜻한 응원의 시선으로 담아낸다.
‘야생 우정 어드벤처’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비바람으로 아지트가 날아가고, 동물이 뿔뿔이 흩어지는 위기도 찾아온다. 하지만 주저앉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체적으로 난관을 극복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낸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배우 4명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특히 인천 출신 김정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경아의 딸’에서 섬세한 연기 내공을 보여준 박혜진의 섬세한 연기가 인천 사람 입장에서 무척 반가웠다. 영화 ‘산양들’은 인천시 인천영상위원회의 ‘지역장편영화 제작지원사업(2024년)’과 ‘지역장편영화 유통배급지원사업(2026년)’을 통해 결실을 보게 됐는데, 이점도 무척 의미가 깊다.
유재욱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지금 모습 그대로도 좋고, 충분히 멋지다는 따뜻한 응원을 건네고 싶었다”면서 “눈 앞의 미래가 불확실하더라도 너무 불안해하거나 중압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믿고 용기 있게 발걸음을 내딛길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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