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30조 원. 전국 아파트 입주민이 꼬박꼬박 내는 관리비 총액이다. 작은 지방자치단체 수십 개를 운영하고도 남고, 대기업 매출액 톱 15~20위권에 버금가는 규모다. 막대한 자금이 투명하고 적법하게 집행되는지를 놓고 곳곳에서 ‘아파트 관리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경북 경산의 한 아파트에서 평소 관리비 내역을 놓고 갈등을 빚던 입주민이 관리사무소에 불을 질러 3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4년에는 평택에서 몸싸움 중 동대표가 쓰러져 숨졌고, 부산에서는 고소·고발전 끝에 입주민이 분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종편 드라마 ‘아파트’가 관리비를 둘러싼 욕망을 포착했다. 전직 조폭이 숨은 돈을 접수하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 출마했다가 ‘난방 열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극 중 관리소장이 비리를 은폐하고 직원이 횡령하는 모습은 시스템 부재의 민낯을 고발한다. 장기수선충당금의 행방을 추적하고 대형 비리를 해결하는 사이다 전개는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하지만 주택관리사들은 분기탱천했다. 방송국 앞에서 규탄시위까지 했다. 허구라지만 불신과 갈등을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반박은 합리적이다.
아파트 관리비 전쟁의 불씨는 불신이다.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 외주 용역업체가 짜놓은 닫힌 생태계에서 입주민의 정보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한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합리적 의심은 공동체의 평화를 깨는 ‘분란’으로 몰리기 일쑤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르면, 300가구 이상 아파트는 의무 관리 대상 공동주택에 해당된다. 입주자대표회의를 구성하고 매년 외부 회계 감사를 받아야 한다. 반면 300가구 미만 소규모 단지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번에 방화사건이 벌어진 경산 아파트 역시 의무관리 대상이 아니었다. 갈등이 생겨도 조정 창구가 없으니 극단적 폭력으로 번졌다.
아파트는 단순한 부동산 자산이 아니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공공성을 연습하는 공동체이자, 일상의 자치가 작동하는 미니 국가다. 정보가 흐르지 않는 공간에는 의심과 적의만 쌓일 뿐이다. 아파트 관리비 전쟁을 끝내려면, 회계 공개 의무 기준을 대폭 낮추고 입주민의 정보 접근권을 넓혀야 한다. 외부 전문 감사를 일상화하면 통제되지 않는 돈이라는 의심도 차차 걷힐 수 있다. 30조 원의 신뢰, 드라마 속 영웅이 아니라 구조의 변화로 실현해야 한다.
/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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