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의 오후 반나절이 ‘깜깜이’가 됐다. 지난달 31일 오후 발생한 서해 최북단 섬의 정전은 8시간이나 이어졌다. 2천600여 가구가 냉방 기구를 아예 쓸 수 없어 폭염에 그대로 노출됐다. 여름철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용기포와 사곶, 두무진 등의 음식점, 숙박업체들도 갑작스러운 정전에 애를 태웠다. 횟집은 손님을 받지 못했고, 다시마 종묘장도 수온 조절이 되지 않아 긴장했다. 공공의료기관인 백령병원도 위급 환자 발생 시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2시간 가까이 지속됐다.
일부 군부대 시설까지 전력공급이 끊긴 것은 특히 안보 측면에서 우려할 만한 사안이다. 정전으로 인해 24시간 작동해야 할 레이더와 감시장비가 잠시라도 멈추면 국가 안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게 된다. 이번 정전으로 군과 해경의 경계·감시 시스템에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국회와 전문가, 그리고 언론이 여러 차례 지적해 왔던 서해 최북단 도서의 취약한 전력 인프라 실태를 떠올리면 자칫 치명적인 안보 공백이 초래될 수도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던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 23일 기존 발전기의 출력 저하로 백령도 전역이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위기에 놓였다. 한전 측은 군에 전기 사용 감축을 긴급 요청했다. 군이 23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비필수시설 전기를 모두 차단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발전기 용량 부족과 노후화가 원인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우려했던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이번 정전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고, 그 한계마저 넘어선 전력 인프라가 초래한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그 사이 있었던 군부대 생활관과 의무중대의 전력공급 차질은 안보를 저해하는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백령도의 전력수요는 매년 늘어날 전망이다. 내년부터 가동될 해수담수화시설과 해경 부두, 2028년의 군부대 해안경비시설 확충, 2030년 이후의 백령공항 배후부지 개발 등에도 전력이 공급돼야 한다. 그럼에도 대응은 느리기만 하다. 한국전력의 백령발전소 증설이 유일한 해법인데 몇 차례 약속했던 준공기한이 내년에는 지켜질지 확신하기 어렵다. 한전에만 맡겨두기에는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주민 생활면에선 인천시가 적극 나서야 하고, 안보 측면에선 중앙정부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사안이다. 삶이 무너지고, 방벽이 뚫리고 나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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