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업들, 경력보다 과감한 ‘인재 등용’

후배가 보듬어야 할 존재보다 ‘경쟁상대’

정으로 이끄는 由來之規 사라질까 걱정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지난달 초에 20대 간호사가 광주시의 한 병원 선배들의 태움 행위를 고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태움은 선배 간호사들이 후배 간호사를 괴롭히며 업무를 교육하는 문화를 지칭하는 것으로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표현에서 유래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만큼 신입 간호사의 작은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이유이나 간호업계의 악습이 여전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태움은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폭력”이라며 진상규명을 지시했다. 보건복지부가 간호사 태움 방지대책에 나서고 추미애 경기도지사도 “태움은 교육이 아니라 모욕과 배제를 반복하는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이라며 경기도 의료원 산하 6개 병원에 실태를 전면 점검해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을 것을 주문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직장 내의 ‘똥군기’ 혹은 ‘짬밥문화’가 다시 소환되었다. 잔반을 지칭하는 ‘짬’에 ‘밥’을 합친 ‘짬밥’은 원래 군대에서 제공되는 식사를 의미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군대 내에서의 경험이나 복무 기간을 상징하는 은어로 둔갑했다. ‘짬밥 좀 먹은 사람’이란 군 생활을 오래 경험한 고참을 뜻하는데 이후 직장이나 학교, 스포츠 등에서도 통용되었다.

서양에도 이와 유사한 단어가 있다. ‘시너리티(seniority)’란 라틴어 ‘senior(늙은, 나이가 많은)’에서 파생된 단어로 조직 내에서 개인이 근무한 기간을 의미하며 근속 기간에 따라 직위나 혜택, 권한 등이 결정되는 시스템이다. 시너리티가 높을수록 승진이나 급여가 오름은 물론 조직 내에서의 영향력이나 권한도 커질 수 있다.

동양 특유의 연공서열(年功序列) 조직문화와 유사하다. 연공서열이란 근속 연수나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지위가 올라가는 체계로 오랜 기간 공동체 중심의 동아시아문화를 지탱해온 요체이다.

1990년대만 해도 중·고등학교 내의 가혹 행위는 군대에 버금갈 정도로 심했다. 고학년 학생들이 저학년생들을 집합시켜 체벌이나 폭행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대학의 군사학과, 경찰학과, 경호학과, 소방학과, 체육학과, 간호학과와 해양대 해사학과, 치과대학, 미술, 음악대학에서는 아직 악습이 남아있단다. 특히 체육대 선배들의 엄격한 후배 기강 잡기 문화는 쌍팔년도의 군대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최근에는 짬밥문화가 거의 사라졌다. 2024년 2월 축구 국가대표팀의 선후배 선수들 사이의 집단난투극이 상징적이다. 요르단과의 ‘2023 아시안컵’ 4강전 전날에 손흥민 주장의 집합 명령을 막내 이강인이 거부한 것이 발단이다. 충돌과정에서 이강인은 ‘하늘 같은’ 존재인 손흥민의 뺨을 가격했단다. 손흥민은 1992년생이며 이강인은 2001년생으로 무려 9세 차이가 난다. 똥군기로 정평이 난 체육계 정서상 경천동지할 일이 발생했다.

시너리티 혹은 장유유서(長幼有序) 관행이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기업조직은 최고경영자의 지시에 따라 구성원들이 일사불란하게 행동한다는 점에서 군대, 관료조직과 흡사하다. 그러나 요즘의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나이나 근무연한과는 상관없이 인재를 과감하게 등용하는 ‘패스트 트랙’제로 전환하고 있다.

조직 내에서 선배들에게 후배들은 보듬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경쟁상대로 부상한 것이다. 한 직장에서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되도록 근무하는 것도 명예나 자부심이 아니다. 고참들은 스스로를 고물 또는 폐자원이라 자조한다.

한국인은 ‘정(情)’이 많은 민족이다. 정의 근본은 나누고 베풀며 연계하고자 하는 마음이며 유교의 핵심가치인 ‘인(仁)’의 영역에 속한다. 나눔의 정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나누고 베풀고자 하는 감성과 사랑이 풍부하다는 의미이다.

장유유서 문화는 조직사회의 직업윤리로 작용,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다. 자원 빈국인 한국과 일본의 산업화과정에서 연공서열 문화는 자본이나 기술에 버금가는 생산요소였다.

그러나 다정(多情)도 심하면 병이 된다. 갑질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하지만 선배들이 한솥밥 식구인 후배들을 정으로 이끌어주는 유래지규(由來之規)마저 사라질까 걱정이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