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0일 대법원 대법정에서 죽산 조봉암 선생의 간첩·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비롯한 주요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 선고가 내려지던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 죽산이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지 52년 만에 나온 무죄 판결이었는데, 이때 대법원은 죽산이 권총을 불법으로 취득해 갖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고 선고유예했다. 당시에는, 죽산 사형 집행의 가장 큰 원인이 된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죄가 사라진 마당에 가벼운 선고유예의 판단이 나온 권총 불법 소지죄에 대해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경인일보는 대법원 무죄 판결 이후 한 달여 동안 여러 편의 죽산 관련 기획 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를 마무리했을 때, 편집국에 팔순의 노인이 찾아왔다. 그는 ‘죽산 조봉암 햇빛으로 걸어나오다’라는 제목의 기획 시리즈가 실린 경인일보를 구하고 싶다고 했다. 신문을 가져간 이 노인과는 며칠 뒤 다시 연락이 닿았다. 그분의 입을 통해 죽산이 권총을 소지하게 된 경위를 소상히 알 수 있었다. 죽산을 간첩으로 옭아맨 수사기관에서는 죽산이 갖고 있던 권총이 간첩 활동을 위한 필수품인 것처럼 꾸며서 공소장에 기재했다.

수사 당국은 1958년 1월 죽산의 침대에서 권총을 찾아냈고, 이를 불법 무기 소지죄의 증거물로 제출했다. 공소장에는 ‘1957년 8월경 당국의 허가 없이 운전기사를 통해 미제 45구경 권총 1정과 실탄 50발을 서울 신당동의 노상에서 성명불상자에게 3만 환에 매수해 불법으로 소지했다’고 적었다. 2011년, 죽산 기획 기사가 실린 경인일보를 챙겨 간 노인이 공소장에 등장하는 운전 기사를 연결해 주었다.

이들 두 분 노인이 죽산에게 권총을 건넨 주인공이었다. 이들은 당시 시대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전쟁 얼마 뒤, 어디서나 권총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권총 거래의 주요 통로는 군인들이었다. 죽산의 권총도 이들이 잘 아는 헌병에게서 “팔아서 용돈이나 쓰라”는 말과 함께 받은 거였다. 1957년 당시 죽산은 온갖 테러 위협에 시달렸다. 실정법은 엄연히 현실에 부합해야 한다. 군인이 민간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권총을 건네던 그때 불법 무기 소지죄는 이미 사문화했다고 봐야 한다. 지난 7월 31일이 죽산 67주기였다. 그의 권총 불법 소지죄야말로 공소기각 사유가 아닐까 싶다.

/정진오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