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 AI 패권 다투는 韓·싱가포르
李 방문, 동맹·공조 약속했지만
인재 교류 없이는 종이 위 머물러
창업 생태계 협력 최적기는 지금
아시아에서 인공지능(AI) 패권을 다투는 나라를 꼽아보자. 일본을 빼놓을 순 없지만, 중국을 제외하면 남는 이름은 둘이다. 한국과 싱가포르. 인구 5천100만 대 600만. 규모는 판이하다. 그런데 AI에 건 판돈의 밀도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은 최근 AI와 반도체 분야에 총 1천500조원을 투자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를 꺼냈고, 국가 차원의 창업프로젝트 ‘모두의 창업’엔 6만3천명이 몰렸다. 싱가포르에서는 로렌스 웡 총리가 국가 AI 위원회 의장을 직접 맡았고, 엔비디아와 오픈AI가 잇달아 연구소를 세웠다. 두 나라 모두 AI를 국가 의제 맨 꼭대기에 올려놓은 셈이다.
지난 3월엔 이재명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AI 얼라이언스 체결, 3억달러 펀드 조성. 뉴스에 ‘역대급 협력’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런데 그 합의를 현실로 만들려면 뭐가 필요한가? 돈이 아닌 사람이다. AI 반도체 공급망도, 공동 연구도, 스타트업 생태계 연결도 오가는 사람이 있어야 굴러간다. 인재 교류 없는 양국 협력은 종이 위에 머문다.
싱가포르는 인구 600만의 도시국가다. 인프라를 아무리 깔아도 돌릴 사람이 늘 모자란다. EP(취업비자) 발급 기준을 높이면서도 기술 인재만큼은 적극 유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외 인재 공급은 이 나라의 생존 문제다. 한편, 아시아에서 영어가 공용어인 거의 유일한 나라, 싱가포르를 찾아 남쪽으로 향하는 한국 젊은이들은 매년 늘고 있다. 싱가포르국립대(NUS)와 난양공대, 싱가포르경영대에 매년 수백명이 입학한다. 미국이나 영국 대신 이곳을 택하는 이유 중엔 이런 게 있다. 7억 인구의 동남아 허브이자, AI와 스타트업에 연간 10억 싱가포르달러를 직접 투입하는 정부. 하지만 졸업 후 현지 기업에 취업하고 싶어도 정작 자리는 많지 않다. 자국민 우선 고용 정책 탓에 외국인 졸업생의 문턱이 높고, EP 최저 연봉 기준도 만만치 않다. ‘취업이 안되니 차라리 직접 자리를 만들겠다’며 스타트업에 합류하거나 창업에 뛰어드는 친구들도 나온다. 정부 간 양해각서와는 별개로, 이들이 자기 발로 양국 사이에 길을 내고 있는 셈이다.
올해 8월 말, 싱가포르 내 한인 대학생을 대상으로 AI 빌더톤이 열린다. 8일간 싱가포르경영대 캠퍼스와 아마존 AWS 오피스를 오가며 실제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게 목표인데 참가자의 과반수가 코딩 경험이 없다. 하지만 AI 도구에 자연어로 지시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른바 ‘바이브 코딩’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코딩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스물세살 한인 청년이 동남아 소비자를 겨냥해 IT 서비스를 구상하는 광경은 2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슬로건이 인상적이다. ‘Building the bridge we wished existed’. 우리가 바랐던 다리를, 우리 손으로 직접 놓겠다는 선언. 한국 정부의 ‘모두의 창업 글로벌 프로젝트’가 싱가포르를 4대 거점 중 하나로 택한 것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K-파운더 펀드’ 1천억원이 조성됐고 ‘K-테크 파이오니어즈’는 해외 한인 기술 인재의 국내 복귀를 돕겠다고 나섰다. 정책이 청년의 발걸음을 따라간 드문 사례다.
20년 가까이 싱가포르에 살며 양국 사이를 오간 사람으로서, 지금이 창업 생태계 협력의 최적기라고 본다. 한국을 떠나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 한인 창업 생태계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싱가포르로 온다 하면 주재원이거나 유학이었지, 창업하러 왔다는 사람은 만나기 어려웠다. 교민 모임에선 자녀 교육과 재테크 얘기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청년들은 다르다. 처음부터 자기 미래를 구상하며 싱가포르를 선택했고 AI를 손에 쥐자마자 뭔가 만들기 시작한다. 양국이 AI에 국운을 걸었고 인재의 수요와 공급이 맞물리는 절호의 타이밍이다. 크로스보더 창업과 양방향 인재 교류가 동시에 열리는 순간은 흔치 않다. 정상 합의가 현장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이 드문 순간에, 코딩을 처음 배운 스물세살의 패기가 MOU 열 건보다 값어치 있어 보인다. 인천에서 바다 냄새 맡으며 자란 벤처빌더가 적도 아래서 20년을 보냈다. 그 세월이 이제서야 다리가 된다.
/원대로 윌트벤처빌더(Wilt Venture Builder·싱가포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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