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들 안정·효율에 최우선
새 시도보다 리스크 관리 다반사
삼전닉스, 한계 가리는 장막 우려
용기·호기심·창의력 등 회복해야
“70대에도 운전면허 반납치 마라.” “80대엔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 게 좋다.” 도발적 언사를 서슴지 않는 이가 있다. 정신과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와다 히데키(和田秀樹)다. 그의 저서 ‘노인은 ‘화낼’ 정도가 딱 좋다’는 노년 건강서에 머물지 않는다. 사회와 조직이 왜 활력을 잃는지를 관통하는 문제의식까지 담고 있다. 핵심 화두는 ‘전두엽의 퇴화’와 ‘조직의 정체’다.
대뇌 가장 앞쪽에 위치한 전두엽(前頭葉)은 의욕과 창의력, 감정조절, 문제해결, 변화적응 등을 담당하는 뇌의 지휘통제소. 그런 전두엽은 안타깝게도 40대부터 쪼그라든단다. 와다는 전두엽이 위축되면 새로운 도전을 멈추고, 익숙한 방식을 선호하며, 과거의 성공 공식을 반복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설명한다. 물론 개인 간에 차이는 있다. 다만 조직의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리더가 이런 성향을 지녔다면 큰 문제란다. 혁신보다 안정이, 도전보다 관리가 우선시 되는 조직문화가 고착될 수 있어서다.
그는 이런 현상을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30년’과 연결 짓는다. 창의적 결단보다 실패를 피해 가려는 의사결정이 거듭되면서 기업의 혁신 동력이 약화됐고 종국엔 국가 경쟁력까지 흔들렸다는 주장이다.
이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일까? 한국도 유사한 징후를 보인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우리기업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조직 중 하나였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앞서 개척했고, 불완전한 상황에서도 과감히 실행으로 옮겼다.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였고 그런 도전정신이 경제대국 한국을 낳았다. 이게 우리가 아는 ‘K-기업’의 역동성이었다.
한데 지금은 어떤가? 많은 기업이 안정성과 관리효율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조직은 복잡해졌고 관리계층은 두터워졌다. 새로운 시도보다 리스크 관리가, 창조보다 절차가, 실행보다 승인과정이 앞서는 경우가 다반사. 원인이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구성원의 중·고령화에만 있진 않다. 경험이 쌓일수록 실패를 회피하려는 심리가 강해지고, 그게 관료적 의사결정 구조와 결합되면 조직은 차츰 변화와 멀어진다. 마침내 기업은 거대한 전두엽의 관성에 빠져든다.
현상은 글로벌 경쟁에서도 드러난다. 우리기업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기술과 생산 능력을 갖췄다. 허나 시장의 판을 바꾸는 혁신에선 테슬라, BYD,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기술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자신의 업(業)을 재정의하는 상상력이 부족한 탓은 아닐까.
“우린 자동차 회사다.” “배터리 제조사다.” “반도체 기업!” 과거엔 이런 정의가 경쟁력이었다. 산업 경계가 무너진 현재는 되레 스스로를 가두는 견고한 틀이 됐다. 자동차는 AI 플랫폼·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반도체는 AI 인프라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상황이다.
내부 메커니즘도 문제다. 젊은 구성원의 아이디어가 “전례가 없다”, “위험하다”, “과거에 실패했다”는 말 한마디에 좌초되는 조직에선 혁신이 자랄 수 없다. 창의력이 회의실에서 꺾이면서 조직은 점점 느리고 육중해졌다. 산업의 재도약을 위해선 기업의 전두엽을 깨우는 변화가 필수다.
하나, 업의 정의를 재설계하라. ‘우린 원래 이런 회사’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 새로운 시장은 기존 산업의 연장이 아닌 또 다른 관점에서 탄생한다. 둘, 실패는 처벌 대상이 아닌 학습 자산이다. 도전을 존중하는 조직에서 혁신은 자란다. 작금의 K자형(양극화) 성장은 위험 회피의 선택이 누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셋, 세대 간의 역할을 분리·결합하라. 경험 많은 리더는 방향을 제시하고 젊은 세대는 실행·실험을 이끌도록 권한을 나눠야 옳다. 세대교체보다 중요한 건 세대협업이다.
전두엽이 위축된 사람은 도전보다 익숙한 선택을 먼저 떠올린다. 기업도 마찬가지리라!
요즘 눈에 띄는 건 삼전·닉스뿐. 반도체 호황은 한국경제의 힘이지만, 우리의 구조적 한계를 가리는 장막이 될 수도 있다. 필요한 건 ‘젊은 뇌’가 아닌 ‘젊게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굳은 사고의 틀을 깨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호기심, 그리고 창의력·상상력을 회복해야 한다.
/김광희 협성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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