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9기 인수위원회 백서 공개
주민들의 절절한 요구 사항 담겨
외부 전문가보다 현장 의견 중요
행정 반영되도록 구조 재정립을
민선 제9기 각 지방자치단체장의 인수위원회 백서가 공개되었다. 당선인의 공약 추진 등과 함께 주민들의 절절한 요구 사항도 일부 담겨 있다. 제안을 보면 주민들의 경험과 고통스러운 증언이 단순한 감정적 토로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정리된 정책 중 일부는 추진에 난관이 있겠다는 것을 직감하는 이유다. 주민의 삶과 지역을 잘 모르는 외부 전문가들이 내세우는 데이터와 살아있는 현장의 목소리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주민의 목소리 중에는 일방적인 주장도 악성 민원도 있다. 하지만 과거처럼 지역과 주민들을 낮춰 보면서 수립된 정책 추진은 성공할 수 없는 때다. 주민은 정책의 일방적 수용자이거나 통제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주민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정책에서 외면당하는가. 영국의 철학자 프릭커(Fricker)는 그의 저서 ‘인식의 불공정’에서 현대 사회의 권력관계에 대해 질문을 한다. 과연 누구의 말이 신뢰받는가. 누구의 경험이 사회적 언어로 정당하게 표현되는가. 그는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행위가 단순히 개인적 모욕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이 지식의 생산과 유통 과정을 통제함으로써 기존의 기득권 구조를 강화하고 정당화하는 고도의 사회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프릭커는 대화자의 성별, 학력, 직업, 출신 지역 등에 대한 편견 때문에 그가 전달하는 진실의 가치를 폄훼하는 증언 불공정을 지적한다. 그리고 소수자의 특정한 삶의 경험을 이해하고 해석할 사회적 언어나 개념적 틀 자체가 없어서 발생하는 해석의 불공정을 비판한다. 권력을 잡고 신뢰를 독점한 집단은 자신들만의 언어로 사회의 진실과 규칙을 독점한다는 것. 그러면서 약자의 주장은 비이성적인 떼쓰기나 무지한 자의 목소리로 낙인을 찍는다.
하지만 인간에게서 세상을 평가하고 지식을 나눌 주체로서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그의 인격과 존엄을 부정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처한 수많은 갈등과 난제의 원인을 보면 프릭커가 지적한 인식의 불공정이 그 바탕에 있음을 알게 된다. 지역의 현안을 다루는 정책의 최초 기획과 수립 과정에서 오랜 기간 삶을 일구어온 주민들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시작한다. 주민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현장성 있는 증언보다는 외부 전문가들의 그럴듯한 이론적 아이디어나 예산과 연계된 정부의 지침이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된다.
그러나 지역의 고유한 상황과 삶의 궤적을 모른 채 중앙집권적 시각이나 외지인의 눈으로 수립된 정책이 만들어낸 실패 사례는 많다. 정부의 지역 균형 발전 공모 예산을 따내기 위해 각 지자체가 외부 업체에 맡겨 유사한 형태의 모노레일, 출렁다리, 체육시설 등을 우후죽순으로 건립했다. 지금은 혈세가 유지 및 관리비로 허비되는 시설로 전락했다. 고령 인구가 대부분인 지역에 도입된 스마트 행정·복지 시스템이 오히려 어르신들을 복지 혜택에서 소외시키고 있다.
주민들이 처한 삶의 현장을 모르는 정책은 결코 정의롭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현지 주민을 지역 문제에 대해 잘 아는 지혜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정책을 강행할 때, 주민들은 깊은 분노와 좌절감을 느낀다. 수많은 갈등의 현장에서 정부와 기업은 과학적 논리나 금전적 보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 결과는 거센 주민 반대와 소송으로 이어지고, 정책의 중단과 행정 불신이라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왔다.
민선 9기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해야 할 일은 제도적으로 주민의 목소리가 행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참여시스템을 재정립하는 일이다. 주민의 삶과 지역의 역사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행정과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 전문가의 식견만큼이나 주민의 제안도 반영되어, 모두가 감동하는 행정을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주민들의 목소리를 정당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는 공정함에서 시작된다. 지역의 수많은 난제 해결을 집단 지성에 기초한 목소리를 듣고 믿으면서 추진해야 할 때다. 그것이 민선 제9기 지방 자치단체들이 가야 할 정의로운 길이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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