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각지대 별거 가정 아이들
도시가스 비용조차 못낼 만큼 생활고
아버지 자활근로… 누나와 세 식구 생활
매일 연습… 장래희망은 국가대표 골키퍼
“예전처럼 온 가족이 다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이 제일 슬퍼요.”
인천 부평구 한 빌라에서 만난 김진수(12·가명)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22년 필리핀 국적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가정의 평화는 순식간에 깨졌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이혼 소송은 마무리되지 않았고, 김군은 어머니, 7살 여동생과 떨어져 아버지, 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 그는 “동생이 너무 보고 싶다. 그래도 지금은 여름방학이어서 자주 만날 수 있다”며 “빨리 동생이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 색칠 놀이를 하면서 놀고 싶다”고 했다.
빌라에 살던 다섯 식구는 아파트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이혼 소송이 시작되면서 김군 등 세 식구는 지난해 반지하 주택으로 보금자리를 옮겨야 했다. 현관문 앞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옷과 생활용품이 상자에 담겨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집 안 곳곳에 짐들이 가득 쌓여 있어 발을 디딜 틈도 없었다. 아버지는 두 개의 방을 각각 사춘기 자녀들에게 내어주고 거실에서 주로 생활하고 있다.
“예전에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맛있는 것도 먹고 휴대전화 게임도 하면서 놀았는데, 이 집에 이사 온 이후론 친구를 초대한 적이 없어요. 집이 창피해요.” 김군은 좁은 방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방은 아버지와 함께 쓰는 2층 침대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였다. 지난해 여름은 이들 가족에게 유난히 혹독했다. 선풍기 한 대로 찌는 듯한 무더위를 견뎌야 했다. 올해는 그나마 에어컨을 지원받아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김군의 아버지는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내와 별거 후 생활고를 이겨내기 위해 건설 현장, 화물차 청소 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지만, 공황장애로 인해 번번이 ‘내일부턴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현재는 그가 자활근로로 얻는 월 120만~140만원으로 세 식구가 생활하고 있다.
수개월째 도시가스 비용조차 내지 못할 만큼 생활고가 깊어지고 있지만, 이들은 복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별거 중인 아내의 근로소득이 세대 소득으로 집계되면서, 의료급여와 생활급여 대상에서 제외됐다.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도 소득이 높은 아내에게 지급되고 있다. 김군의 아버지는 “막내딸의 양육권을 두고 이혼 소송이 길어지고 있는데, 이젠 하루빨리 소송이 마무리되길 바라고 있다”며 “부모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사춘기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부모님의 갈등은 김군에게 큰 상처를 줬다. 부모의 별거 이후 김군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와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충동적인 행동으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으며 지금도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김군은 “작은 일에도 화가 날 때가 있다”며 “그럴 땐 차라리 눈을 감고 최대한 잠에 들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김군은 학업에 열중하고, 장래 희망인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프랑스 축구선수 ‘위고 요리스’를 가장 좋아한다는 김군은 지난해에는 학교에서 여학생들이 꾸린 축구팀의 코치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하얀색 골키퍼 장갑을 꺼내 들며 “날아오는 공이 손에 철썩 달라붙는 장갑을 새로 가지고 싶고, 축구 학원도 다시 다니고 싶다”며 “매일 연습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 꼭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 이 기사는 초록우산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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