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는 직접 돕는 것… 건너선 마음 닿기 어려워”
매달 셋째주 토요일 어르신 머리 손질
가게 문까지 닫고 재료비도 직접 부담
한달에 한번 방문날은 ‘마을 잔칫날’
“아우님, 여기 형님들도 계시는데 먼저 깎으면 안 되지. 우리 원장 선생님 표창장 줘야 합니다.”
여주시 세종대왕면 백석1리 마을회관은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이면 주민들로 북적인다. 이날만큼은 마을회관이 미용실로 바뀐다.
여주시내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박은정(51) 원장은 지난 22일에도 회관 바닥에 도구를 펴고 어르신 30~40명의 머리를 손질했다. 커트와 염색은 물론 어깨를 주무르는 일까지 이어진다. 백석1리에는 65세 이상 주민이 50~60명가량 거주한다. 김명진 전 이장은 “마을 어르신 80~90%가 이 자리에서 머리를 깎는다”고 말했다.
박 원장이 처음부터 이 마을만 다닌 것은 아니다. 인근 읍·면·동 여러 마을회관을 돌던 시절이 있었지만, 한 사람의 스타일을 파악하고 꾸준히 관리하기 위해 한곳에 집중하기로 했다. 박 원장은 “이분이 어떤 스타일인지 파악을 해야 계속 해드릴 수 있는데,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그게 안 되더라”고 말했다. 마침 백석1리 이장이 마을에 와줄 수 있겠느냐고 청했고, 다른 일정을 정리한 뒤 이 마을만 남겼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약속을 6년째 지키고 있다. 어르신들은 한 달 전에 다음 방문일을 알고 기다린다. 김 전 이장은 “6년 동안 한 달도 건너뛴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염색약과 재료비, 택시비는 모두 본인 몫이다. 마을에서 보태겠다고 했지만 받지 않았고, 토요일은 가게 문을 닫는다. 박 원장은 “기부라는 게, 직접 도와주는 게 아니면 건너 건너는 소용이 없더라”고 말했다. 헌혈증서를 열 장씩 모아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건네는 일도 같은 이유로 이어오고 있다.
미용과 봉사는 집안 내력이다. 어머니가 미용사였고 언니와 남동생, 형부와 올케까지 같은 일을 한다. 어머니는 쌀이나 라면을 사서 남의 집 앞에 몰래 두고 오곤 했다. 박 원장 역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돕는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
봉사날은 마을 잔칫날이기도 하다. 이날도 부녀회원들이 삼계탕과 돼지고기볶음, 소불고기 등 음식을 차렸다. 박명희 부녀회장은 “흩어져 사는 어르신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은 한 달에 이날뿐”이라고 말했다.
6년이 쌓이면서 그 상에 앉는 얼굴은 줄었다. 매달 오던 이들 가운데 몇은 더 오지 않는다. 이번 방문 전날에도 한 주민의 장례가 치러졌다. 박 원장은 1년 전 세상을 떠난 한 할머니를 떠올리며 “되게 열심히 사시고, 말씀도 잘해주시고, 좋은 얘기도 많이 해주셨다”고 말했다.
권순철 이장은 박 원장에게 자원봉사 실적을 등록하라고 여러 차례 권했지만, 본인이 직접 등록해야 하는 절차 때문에 실적으로 남지 않았다. 6년간 백석1리 어르신들의 머리를 손질해온 봉사가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지 않은 셈이다.
여주/양동민기자 coa007@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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