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모씨네사회적협동조합 공동기획

1945년 1월18일 부평 인천육군조병창 항공사진(RG 373, ON051456, 37N 126E, 미국 NARA). /모씨네 디지털아카이브 제공
1945년 1월18일 부평 인천육군조병창 항공사진(RG 373, ON051456, 37N 126E, 미국 NARA). /모씨네 디지털아카이브 제공

경인일보는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과 공동으로 기획·연재하는 ‘인천조병창 아카이브, 빈칸을 채우다’ 첫 편에서 해방 7개월여 전인 1945년 1월18일 미 육군항공단 소속 사진비행대대가 촬영한 부평 ‘인천육군조병창’ 항공 사진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한다. 드넓은 부평 평야를 차지한 무기 공장들과 도로, 인근 주택지와 공장 지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현재 캠프마켓이라 불리는 이 땅은 도심 한복판에 있지만, 특별한 허가가 없이 출입할 수 없었고 들어가 본 이도 극히 드문 ‘금단의 땅’이었다. 1930년대 말부터 일본이 대규모 군수기지를 조성했으며, 이미 1920년대부터 일본 육군연습장으로 쓰였다. 해방 이후에는 애스컴(ASCOM)과 캠프마켓 등 대부분 미군이 주둔했다. 내부에 어떠한 시설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해 현재까지도 미지의 땅이기도 하다. 그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조병창 아카이브 기획 시리즈에서는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이 수년에 걸쳐 미국 국립공문서관(NARA), 영국 국립공문서관(TNA),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와 외무성 외교사료관 등에서 새로 발굴한 조병창 관련 사진·문서·지도·영상 등 기록물을 전문가들이 해석해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펼치고자 한다.

시리즈에서 공개하는 자료 상당수는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어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조병창 역사를 구체적으로 복원할 자료가 대거 발굴돼 추후 캠프마켓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앞으로 다룰 조병창·조선기계제작소 잠수함 프로젝트, 조병창 지하화 구상과 지하시설, 미군 인천 폭격 계획 등이 주목된다.

시리즈 첫 편에서는 을사늑약 체결 때 자결을 택한 대한제국 관료 민영환(1861~1906)이 1900년 운영한 목양사라는 농장이 친일파들에게 강탈된 후 일본인에게 넘어가고, 일본 육군연습장으로 조성돼 한반도 최대 군수기지인 조병창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전갑생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 수석연구원이 설명했다.

일제강점기 영화초등학교 3대 교장을 지내고 영화유치원을 설립했으며, 인천에서 사회·문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헤스 부인’이라 불렸던 마거릿 이사벨 헤스(Margaret Isabelle Hess)가 해방 직전인 1945년 7월 미 해군 정보국에 인천의 상황을 증언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