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문화생활, TV와 극장 애니가 전부

박신양 작가와 박찬대시장의 대화 반가워

시간·경제적 여유 부족 ‘정책’으로 바꿔야

김성호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김성호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초등학교 3학년 막내의 발이 그새 더 자란 모양이다. 개학하면 신을 실내화가 작아졌다는 말에 5천원을 주고 새것을 사줬다. 아이 실내화를 바꿔주며 막내의 여름방학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막내는 이번 여름방학을 어떻게 기억할까. 미술 전시장 두어 곳과 오케스트라공연 한차례, 상업영화 2편과 독립영화 1편, 과학관 방문, 탐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화책 15권이 막내의 이번 여름방학을 채웠다. 고비용 지출이 수반되는 형태의 방식도 있을 수 있겠으나,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하고 비교적 저렴한 방식으로 막내에게 ‘문화자본’을 ‘주입’하며 적당히 부모로서의 의무방어전을 치러냈다.

개학을 앞둔 시점, 내 어릴 적 모습은 어땠는지 자연스레 떠오른다.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미술관·박물관 찾아가기’ 숙제를 마치지 못한 탓에 마음을 졸이며 불편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디에선가 미술관 입장권을 구해오는 것으로 방학숙제를 끝냈다며 자랑하던 친구 녀석이 괜히 꼴 보기 싫었던 기억도 난다. 당시 부모님은 박물관·미술관에 찾아가는 것을 즐길 취미나 흥미가 없었고, 시간적 경제적 여력도 부족했다. 무엇보다 더 그럴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하셨던 것 같다. 자녀의 방학숙제로 제출할 입장권을 어디서 구해올 만큼 요령을 부릴 분들도 아니었다. 결국 내 유년기 ‘문화생활’은 TV와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전부였다.

교과서 밖에서 경험한 그럴듯한 첫 문화생활은 선인중학교 재학 시절이었다. 당시 동산중 인근에 생긴 ‘해반갤러리’에서 실제 미술작품을 두 눈으로 직접 감상한 것이다. 어린 마음에 적지 않은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발적인 방문은 아니었다. 학기 중이었는데, 미술 선생님이 인천에도 ‘갤러리’라는 공간이 생겼으니 다들 한 번씩 다녀오라며 내주신 숙제 덕분이었다. “절대 작품에 손을 대면 안 된다”, “멀리 떨어져서 작품을 감상해라”, “무료 입장이니, 매표소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지 말아라” 등등 까까머리 중학생이 미덥지 못했는지 이것저것 당부를 덧붙이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계단을 올라 갤러리에 발을 들이기까지 두려움과 공포감이 나를 짓눌렀다. 전시장 안에서 실수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미술 작품 감상이 태어나서 처음이라는 것도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촌놈이 촌놈처럼 보이기 싫어 생긴 웃지 못할 스트레스였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인천의 문화적 환경은 얼마나 많이 달라졌을까.

최근 박찬대 인천시장이 기부금을 건네는 박신양 작가와 만나 나누는 대화를 함께 들을 기회가 있었다. 박 시장이 구상하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앞으로의 정책 방향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어 무엇보다 반가운 자리였다. 그동안 민선 9기 신임 박 시장의 문화예술 분야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던 터였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박 작가의 기부금에 대한 감사 인사를 표하며 “예술은 오롯이 시장(논리)에 맡겨서는 어려울 것 같다”며 “음악·미술 등을 경제적 여건이 되는 사람,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만 엘리트 예술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난해도 미술(작품)을 관람하고 또 작품 활동에 참여도 하고, 가난해도 음악을 즐기고 직접 노래를 하거나 춤도 출 수 있어야 한다”며 “이런 부분들이 먹고 사는 문제와 함께 우리가 시민들의 행복을 위해서 함께 추구해야 될 부분이며 공공 영역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먹고사느라 하루 대부분을 일터에 쏟아부어야 하는 이들이 그림을 보거나 공연을 즐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시민일수록 문화예술은 가장 먼저 포기해야 하는 사치로 여겨지기 쉽다. 그렇기에 문화와 예술을 개인의 형편이나 시장 논리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박 시장의 말은 공감이 갔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정책이다. 박 시장의 훌륭한 철학은 시민이 체감하는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민선 9기 인천시가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김성호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