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암묵적 원리’로 작동
때로는 도덕률의 근거되기도
개인·민족이 공유 할때 ‘가치’
아픈 현실 넘어설 서사는 뭘까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의 인기가 뜨겁다. 기원전 13세기경의 전쟁 서사가 지금 이 시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를 영상으로 옮긴 이야기에 이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열광한다. 그 열광이 다만 영웅서사에 대해서나 또는 한 편의 잘 만든 아이맥스 영화에 대한 반응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왜 사람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시대, 다른 곳에서 벌어진, 그것도 사실일성 싶지 않은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 시대를 어두운 시대라고 이야기 했다. 과연 그런가?
잠시 눈을 돌려 현실을 보자. 세계 몇몇 위의 경제권, 한류 열풍, 인공지능과 3대 메가 프로젝트 등의 소식을 접하면 한국 사회는 엄청난 성장과 함께 현란한 미래가 눈앞에 다가온 듯하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청년 실업과 주거 문제, 세재 개편과 부동산 문제 등 사회 갈등이 어느 때보다 깊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지겨운 당권 갈등, 청산되지 않은 내란 세력의 기득권 독점은 이 어두움을 증폭시킨다. 수사기소 분리는 민주주의의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검찰에 통제되지 않은 권력을 안기려 한다. 똬리를 트고 앉아 철지난 권한을 독점하려는 법조 현실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 얼마나 깊은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필요한 민주적 권력 분산 대신 이전의 특권을 지키기 위한 호도된 행태를 자행한다. 언론은 심층적 비판보다 이 세력을 옹호하는 데 진심이다.
인간을 흔히 서사적 존재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삶과 세계에 대한 규범과 의미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것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고 해명해내는 가운데 형성된다. 인간은 서사를 통해 자기 존재와 삶에 필요한 규범과 원리는 물론, 공동체 유지를 위한 정당성을 찾으려 한다. 이런 규범과 원리는 어떤 초월적 세계에서 보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지난 시간과 사건을 통해 이 규범과 원리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그것을 이야기로 엮어낸 것이 서사이며 그 서사구조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이후의 삶과 세계를 이끌어가는 토대가 된다. 서사는 개인 삶에는 말할 것도 없이 그가 살아가는 공동체에 암묵적 규범과 원리로 작동한다. 때로는 도덕률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서사를 공유하는 집단은 언어와 역사, 경험을 공유하면서 정체성을 형성한다. 공유하는 가정과 사회를, 민족과 국가를 만든다. 인간이 서사 존재인 까닭은 끊임없이 서사를 만들고 서사를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삶을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서사는 인간이 자신의 삶과 세계 안에서 발견한 지난 사건의 의미이며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지향하는 이야기 체계이다. 이 기억과 지향을 해석하고 설정하는 과정이 우리의 현재를 만든다.
서사 없는 개인과 민족은 있을 수 없다. 서사를 공유할 때 우리는 우리 삶과 세계, 가치와 의미를 공유하게 된다. 오디세우스 서사는 트로이 전쟁을 겪으면서 마주했던 사건의 기억과 이 사건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토대를 이루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살아가야할 미래 삶에 대한 지향을 설정한다. 패권을 둘러싼 전쟁의 허무함과 죽어간 이에 대한 죄책감, 파괴한 문명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 담겨있다. 끊임없이 무너지는 지난 시대의 규범, 환대의 법칙을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전쟁과 귀환 과정에서 죽어간 동료의 영혼을 위안하기 위해 떠나가는 오디세우스는 이런 성찰을 실천하고 있다. 온갖 고난을 안고 돌아온 고향과 못다한 위안을 위해 이제는 떠나야할 고향 이야기는 한 시대를 반성하고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서사이다.
우리는 어떤 서사를 담고 있는가? 식민시대의 고통과 해방, 민주화와 경제 성장이 이룩한 현재의 삶에 어떤 서사를 안고 살아가는가? 서사에는 의미와 지향이, 기억과 기획이 담겨 있다. 서사를 통해 기억을 성찰하고 지향을 기획한다. 이로써 현재 삶과 세계가 비로소 살아갈만한 의미와 가치를 드러내게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서사는 어떤가. 실용이 서사를 삼켜버린 현실은 놀라운 풍요에도 불구하고 허무와 냉소를 불러온다. 이를 돌아봐야할 지성과 교육은 심하게 망가졌다. 병들고 아픈 이 현실을 넘어설 서사는 어떠해야 하는가.
/신승환 가톨릭대 명예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