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국인 가리지 않고 처우부터 달라져야

임금·노동조건 투명화, 브로커 개입 차단

일정 기간 근무자 안정적 체류 보상 필요

강희 논설위원
강희 논설위원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첫발을 떼었을 때, 돌봄의 손길을 받던 어르신은 21만 명이었다. 고령화 가속화로 지난해 장기요양 인정자는 123만5천 명으로 6배 늘었다. 8천여 곳이었던 전국 장기요양기관 역시 3만 곳에 달한다. 성장형 복지국가의 지표로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필요한 곳에 사람이 없어 삐걱댄다. 건강보험연구원은 요양보호사가 올해 4만3천 명, 내년 7만9천 명, 2028년에는 11만6천 명가량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돌봄은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의 손과 온기에 기대는 노동이다. 그 자리가 비면 초고령사회 돌봄은 뿌리부터 흔들린다.

정부가 던진 승부수가 ‘외국인 요양보호사 양성대학’이다. 올해 1학기 전국 21개 대학 강의실에 낯선 억양의 20대들이 앉았다. 베트남, 미얀마, 우즈베키스탄, 몽골, 네팔 등에서 온 1기생이다. 대학에서 한국어와 전문 요양 이론·실무 실습을 체계적으로 이수해 의료복지 전문가가 되겠다는 각오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을 테다.

정부는 외국 유학생을 유치해 학위, 자격증, 취업, 정주까지 한 줄로 꿰겠다는 구상이다. 단기 노무 수입에서 벗어난 발상의 전환이다. 자격시험을 통과하고 취업하면 특정활동(E-7-2) 비자로 머무를 길도 터줬다. 학령인구 절벽 앞에서 대학들은 반겼고, 돌봄 인력난에 고심하던 지자체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13개 광역자치단체가 후보를 추천하고, 정부는 24개 대학을 낙점했다. 그런데 첫 학기 성적표가 다소 아쉽다. 24개 대학 중 3곳은 교육부 평가를 통과하지 못해 이미 시범사업 지위를 반납했다. 3월 개강한 21개 대학도 4곳만 정원을 채웠다. 법무부가 배정한 연간 정원은 1천92명이었지만, 정원 외 모집 대학 등을 제외한 실제 대학별 정원은 736명에 그쳤다. 1학기 등록자는 538명이었지만, 6월 기준 재학생은 505명이다. 정부가 그렸던 그림과 교육현장 사이엔 격차가 크다.

양성대학은 입국 비용부터 등록금까지 유학생이 부담하는 구조다. 모집 중개 과정의 빈틈을 브로커가 파고든다. 유학생들은 많게는 수백만 원대 수수료를 짊어지게 된다. 간호대학인 줄 알고 입학했다가 뒤늦게 요양보호 과정을 알게 된 경우도 있다는 게 현장의 증언이다. 정부가 제도의 문은 열었는데, 문턱을 넘는 값은 외국 청년들 몫으로 돌아갔다.

더 걱정스러운 건 졸업 이후다. 양성대학 제도 이전에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보유한 외국인은 2만2천 명이 넘었다. 하지만 2024년 말 기준 71%인 1만6천122명은 현장에서 근무하지 않았다. 몸으로 부딪히는 노동에 비해 임금은 박했고, 존중은 더 박했다. 씻기고 먹이고 말벗이 되는 일은 손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일인데, 마음값을 쳐주는 곳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지금 강의실 안 예비 요양보호사의 미래는 다를지 의문이다. 정착할 이유를 만들어주지 않는 한, 제도는 대학 정원 채우기용 이벤트로 끝날 공산이 크다. 대학이 유학생 유치 수단으로 몰두하는 순간, 제도는 목표를 잃는다.

돌봄은 존엄을 다루는 고숙련 감정노동이다. ‘얼마나 더 뽑을 것인가’보다 ‘뽑은 이들이 왜 떠나는가’를 물어야 한다. 돌봄 정책의 중심은 사람이다. 선발 단계부터 공적 영역에 포함하는 것이 신뢰의 출발점이다. 임금과 노동조건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음성적 브로커의 개입을 차단해야 한다. 한국어 교육은 깊이 있게, 실습은 현장과 괴리 없이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 일정 기간 근무자에겐 안정적 체류 자격이라는 확실한 보상을 걸어야 한다. 물론 체류만 노린 편법 통로는 막아야 한다.

노인이 살던 곳에서 의료·요양·돌봄·주거를 하나로 묶는 통합 서비스가 대세다. 돌봄인력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현재 국내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자는 300만 명에 육박하지만 실제 장기요양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65만 명에 그친다. 내국인도 못 버티고 떠나는 자리에 외국인 청년들이 오래 머물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에 가깝다. 내·외국인 가리지 않고 요양보호사의 처우부터 달라져야 한다. 양성대학이 ‘인력 배출 기관’에만 머문다면 초고령사회의 돌봄 위기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강의실을 채우는 일보다 어려운 건, 그 자리를 지키게 만드는 일이다. 돌봄은 희생과 소모가 아닌 교감과 보람이어야 한다. 돌보는 이가 행복하지 않은 현장에 어르신의 행복이 머물 자리는 없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