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천 별세 후 돌아본 한국야구

예측불가 승부, 커지는 경기 흥미

인프라 측면에서 비약적인 발전

늘어난 관중 K-컬처 대표 상품

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백인천 감독이 별세했다. 이로써 프로야구 출범 당시 6명의 감독 중 5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롯데의 박영길 감독만이 유일하게 생존해 있다. 44년의 연륜이 쌓인 프로야구는 장족의 발전을 했다. 천만관중 시대에 돌입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에는 불멸의 기록들이 만들어졌다. 박철순 선수는 단일시즌 22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백인천 선수는 타율 4할1푼2리로 타격왕이 되었다. 불멸의 기록은 투타(投打)뿐이 아니다. OB는 삼미를 상대로 16전 전승을 기록했다. 전승 영광(반대 입장에서는 치욕)의 주역이 박철순 선수다.

공식기록은 아니지만 또 하나의 진기록이 있다. 백인천 뒤에 따라 붙는 ‘감독 겸 선수’다. 메이저리그 초기에는 감독 겸 선수가 많았다. 다른 경기와 달리 야구감독은 유니폼을 입고 있다. 그 이유는 초기 야구에서 감독이 바로 경기에 투입되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른바 플레잉 매니저다. 전문화된 현대야구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오직 원년에만 감독 겸 선수가 있다. 올드 팬에게는 진루하여 누상(壘上)에서 타석의 선수에게 작전지시를 하는 백인천 감독 겸 선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백인천 감독의 부음은 지난 44년의 한국야구를 돌아보게 한다. 한국야구는 발전했는가. 원년에 불멸의 기록을 수립한 박철순과 백인천 선수는 모두 선진 야구를 경험했다. 박철순 선수는 미국 마이너리그 투수였다. 백인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진출 선수다. 일본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했다. 타격왕 수상 경력도 있다. 지금으로 따지면 이정후 선수 이상이라 할 수 있다. 박철순과 백인천 선수는 국내 출신과 비교하여 한 차원 높은 기량을 보여주었다. 해외와의 차이가 존재한 것이다.

지금의 한국야구는 어떠한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의 기억은 아득하다. 이제 일본은 ‘넘사벽’이 되었다. 아시아 예선에서는 대만을 이기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관중은 증가했지만 야구는 1970년대의 고교야구로 퇴행하는 느낌이다. 볼넷과 실책이 남발하고 결정적 순간에 끝내기 폭투 등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나온다. 경기력의 저하는 승패를 끝까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들어 역설적으로 흥미를 배가한다.

경기외적인 면에서 한국야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야구인프라 측면에서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팀 수가 증가했다. 경기장도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초기에는 맨땅에서 야구했다. 전광판에는 선수 이름만 나왔다. 이제 원년의 야구장에서는 더 이상 경기를 하지 않는다. 서울과 부산을 제외한 모든 구장은 21세기에 건설되었다. 잠실야구장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폐쇄될 예정이고 부산도 신축구장 논의가 진행 중이다.

선수들은 최상의 그라운드에서 게임을 하고 관중은 쾌적한 환경에서 관전한다. 1980년대에는 지상파방송 두 곳만이 간헐적으로 야구를 중계했다. 지금은 케이블, 위성, IPTV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전경기가 중계된다. 매일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이 편성된다. 2군 경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팬들도 변화했다. 초기 야구장은 스탠드에서 음주와 흡연이 가능했다. 야구장은 주로 중년아저씨들의 술 먹고 욕하는 곳이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제는 연인, 친구, 가족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회사원들의 단체관람도 많다. 외국인 관중도 부쩍 늘어났다. 이제 야구장은 K-컬처의 하나로 대한민국 대표 관광상품이다.

지난 40여 년간 한국현대사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6·10민주화운동으로 직선제가 도입되고 민주화가 달성되었다. 평화적 정권교체도 이루어졌다. IMF 경제위기에도 야구는 계속되었고 코로나 봉쇄시대에도 게임은 진행되었다. 야구는 항상 국민들을 위로해주었다. 한국야구의 경기력이 쇠퇴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어린이에게는 꿈을 성인에게는 건전한 여가선용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프로야구 파운더들의 소망은 달성되어 간다. 이 모든 것은 원년부터 시작한 선수, 코칭스태프와 야구관계자들의 노고 덕분이다. 물론 팬이 없으면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았다. 한국야구계의 큰 별 중 하나가 백인천 감독 겸 선수였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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