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수사, 공장·협력업체에 한정
의사결정 자료 확보 가능성 낮아
HL만도 평택공장 하청노동자 사망사고(8월24일자 7면 보도 등)로 정몽원 HL그룹 회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지만, 앞선 고용노동부와 경찰의 합동 강제수사가 사고 공장과 협력업체에 한정되면서 실질적 경영책임자의 안전 확보 의무 위반을 입증할 증거 확보에 공백이 생긴 모양새다.
수사당국이 HL만도 본사와 지주사 차원의 의사결정 과정까지 들여다보지 못할 경우 과거 SPC 계열사 중대재해처럼 그룹 회장의 책임 여부를 규명하지 못한 채 수사가 마무리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26일 HL만도의 공시자료 등을 보면 HL만도의 최대주주는 지분 30.25%를 보유한 HL홀딩스다. 정 회장은 HL홀딩스 지분 28.04%를 가진 최대주주이자 HL만도 사내이사로, 지주사를 통해 HL만도를 지배하는 구조다.
앞서 故김승모 중대재해 대책위원회와 유족은 지난 24일 정 회장 등을 중처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대책위는 이 같은 지배구조와 회사 사업보고서상 업무 총괄 역할 등을 근거로 정 회장이 주요 의사결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경영책임자라고 주장한다.
정 회장이 실제 경영책임자에 해당하는지를 가리려면 안전 관련 예산과 인력 배치 등 주요 사안을 누가 보고받고 최종 결정했는지를 뒷받침할 자료가 필요하다. 중처법은 사업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경영책임자에게 재해 예방을 위한 인력과 예산, 안전보건관리체계 이행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현재까지 압수수색은 평택공장 중심으로 이뤄졌다. 평택지청과 경기남부경찰청은 사고 발생 16일 만인 지난 7일 HL만도 평택사업장과 김씨 소속 협력업체 등 2곳을 압수수색했지만, HL만도 본사나 HL홀딩스 등 상위 의사결정 라인을 겨냥한 강제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보고 체계와 안전 관련 의사결정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사한 SPC 계열사 중대재해는 그룹 총수의 책임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2022년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숨진 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중처법 위반 혐의로 고소됐지만, 노동부는 강동석 SPL 대표이사와 법인만 검찰에 송치했다.
반면 같은 해 삼표산업 양주 채석장 붕괴사고에서는 노동부가 양주사업소 등에 이어 사고 14일 만에 서울 종로구 본사 안전·경영 관련 부서까지 압수수색했고,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 기소로 이어졌다.
SPC 사건에 이어 이번 HL만도 사건에도 법률대리인으로 참여한 권영국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법인 만큼, 누가 예산과 인력 등 주요 현안을 최종 결정했는지 확인하려면 의사결정권자를 대상으로 한 강제수사가 필요하다”며 “공장만 압수수색해서는 이런 책임 여부를 밝히기 어렵다”고 짚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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