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문호 이색이 노래한 교동의 풍광
‘풍경 맛집’ 개성 관료들의 최고 휴양지
포은 정몽주·목은 이색, 時 남겨
노을과 술, 뱃놀이로 이어진 섬의 풍류
오늘도 화개산에 오르면 북녘 산하가 한눈에
강화군의 주요 섬이 다 마찬가지이지만 교동(喬桐) 역시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옛 정취를 물씬 풍기는 대룡시장과 강 건너 북녘땅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는 화개산은 그야말로 회색빛에 갇혀 사는 도시인들에게는 색다른 맛을 안겨 주는 청량제가 아닐 수 없다. 대룡시장에 왔다가 화개산을 들르는 것인지, 화개산 모노레일을 타러 왔다가 대룡시장을 찾는 것인지, 무엇이 앞이고 무엇이 덤인지는 중요치 않다.
고려시대 교동은 수도 개성에 사는 여유로운 이들에게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최고의 휴양지였던 모양이다. 그 시대 시인 묵객들에게 교동과 화개산은 저녁 노을을 즐기며 한잔 술에 마음을 풀어헤치는 그런 곳이었다.
16세기에 편찬된 종합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 ‘교동현(喬桐縣)’ 편에서는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고려 말 삼은(三隱) 중의 한 명인 목은 이색(1328~1396)의 시를 여러 편 소개하고 있다. 교동과 관련해 이색이 남긴 시는 ‘교동 3수(喬桐 三首)’, ‘기유교동(記遊喬桐)’ 등이 전한다.
‘교동 3수’는 바다 속 화개산이 하늘 높이 솟아 있고 산 정상 사당에 제사 지내고 술을 마시면서 북쪽 하늘을 바라본다는 내용, 산 아래 승방에 놀러 와 들녘 과실이 여무는 걸 보고 토지 신에게 제사하고 또 술을 마신다는 내용, 돛단배 그림자 나는 듯이 빠르고 해는 서산에 지고 산 아래 집집마다 막걸리를 내고 파를 뜯고 회를 치는데 닭은 횃대에 오른다는 내용이다. ‘교동 3수’는 한가로운 어촌 교동에서 저녁 노을을 보며 술을 마시고, 북녘땅을 바라본다는 지극히 감상적인 내용이다.
‘교동에서 노는 바를 적는다’는 의미의 ‘기유교동’은 어부가 자주 음식을 내왔다는 부제를 달고 있다. 여기에는 밀물과 썰물, 거룻배, 화개산 등과 함께 경원전(慶源殿)이 등장한다.
경원전은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석릉(碩陵)의 주인인 비운의 임금 희종이 교동에 유배되었을 때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희종의 유배 생활까지 시어(詩語)의 깊은 곳에 담아냈는지는 뚜렷하지 않지만 그 경원전을 이색은 ‘기유교동’에서 노래했다.
이색의 부친 이곡(李穀, 1298~1351)도 자연도(紫燕島, 현재의 영종도) 주변에서 뱃놀이하면서 갯벌의 아름다움과 돛단배와 소금 굽는 가마 연기를 노래한 적이 있다. 이곡은 교동 쪽으로 뱃놀이를 나왔다가 내친 김에 영종, 용유까지 나아갔을 수도 있다.
아무튼 교동 일대는 개성에 사는 관료들이 자주 찾는 휴양지였음에 틀림없다. 고려의 많은 시인 묵객들이 교동에서의 노을 감상을 남겼고, 교동에서의 술 마심을 노래했다.
강화도 사는 함민복 시인이 ‘물울타리를 둘렀다’고 말하는 ‘섬’은 바다만큼이나 낮기 때문에 그 섬에 올라탄 산은 야트막해도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고려의 문호 이색 역시 교동의 화개산을 일러 ‘하늘에 닿았다[揷靑天]’고 하지 않았던가.
요즘 화개산의 최대 볼거리는 정상에 자리잡은 전망대다. 매표소에서 정상까지 20분 걸리는 모노레일을 많이들 이용한다. 전망대에서는 강 건너 북쪽 하늘과 북쪽의 산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썰물 때면 강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 걸어서도 남북을 오갈 수 있을 듯싶다. 옷을 벗어 머리에 이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 교동으로 피란 나왔다고 하는 한국전쟁 당시의 실향민 이야기를 실감케 하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화개산 북쪽에 전망대가 있다면 남쪽에서는 교동향교 옆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화개사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 화개사는 1967년 화재로 인해 모두 타 버리는 바람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고려 때는 화개암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곳에서 목은 이색이 공부를 했다고 전하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화개사 계단을 오르기 전 왼편에 자그마한 부도탑을 볼 수 있다. 겉으로는 무척 오래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자세한 내력을 알 수는 없다.
지금, 민간인통제선을 지나야 하는 교동에서는 고려 때처럼 뱃놀이를 즐길 수 없다는 점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고려시대 휴양지 교동과 화개산에서는 여전히 도심에 찌든 때를 벗겨 내기에는 충분한 풍광과 내력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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