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각 거점역할 끌려 근무”
첫 근무지 서울역 주변 노숙자 다수
쾌활한 성격 앞세워 응대방법 터득
다문화가정 위한 통역사 병원 상주
소외계층 최후보루, 정부지원 필요
아버지가 법관이 되라며 이름을 ‘헌(憲)’으로 지었다.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껴 의과대학에 진학, 결국 법복 대신 흰색 가운을 입고 평생을 환자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환자를 통해 직업의 가치를 깨닫고 지금도 병원에서 즐거움을 찾는 수원중앙병원 신경외과 김헌 원장의 이야기다.
전문의를 딴 이후 김 원장의 첫 근무지는 서울적십자병원이었다. 90년대 후반 IMF 사태의 여파로 서울역 주위에 노숙자들이 급증했고, 거처나 연고지가 없는 행려환자 대다수가 이 병원을 찾았다. 의료진조차 기피하는 부류의 환자였지만, 김 원장은 이들을 위해 적극 팔을 걷어붙였다. 김 원장은 “이 사람들도 환자다. 당시 입원 행려환자를 한 번에 100명까지 본 적도 있었고 그래서 한때 ‘행려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했다”며 “이들을 받아주는 병원마저 무너진다면 이들은 갈 데가 없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이후 정신과 진료를 담당하며 정신질환 환자들을 본격 상대하기 시작했다. 이들에 대한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특유의 쾌활한 성격을 바탕으로 환자들을 응대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김 원장은 “물론 간혹 위협적인 돌발행동을 보이는 환자들도 있지만 이들은 극히 일부”라며 “정신질환 환자가 다 무섭고 이상할 것이라는 편견만으로 이들을 배척할 게 아니라, 이들을 품을 수 있는 의료 환경을 구축하는 게 더 시급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올해 1월 수원중앙병원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정신질환 환자를 비롯해 다문화 가정이나 소외계층 등 의료사각지대 환자들의 거점 병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이끌렸다. 김 원장은 “소위 돈이 되지 않는 환자들을 받는 병원은 요즘의 트렌드와 분명 결이 다르다. 하지만 좋은 사회일수록 이런 병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아무래도 경영상의 어려움이 뒤따르는 게 사실이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수원중앙병원 입원 병동에는 전체 260여개 병상 중 정신과에 별도의 70개 병상이 할당돼 있다. 입원조차 여의치 않은 정신과 환자들이 찾는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다. 다문화 가정 환자들을 위한 통역사들도 병원에 상주하고 있다.
김 원장은 매일같이 정신과 병동 회진을 돈다. 가벼운 농담과 장난을 곁들이며 환자들과의 벽을 허문다. 남들은 꺼리는 일이지만 기꺼이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정신병력이 있는 심근경색 환자였는데 다른 병원에서 받아주질 않아 뒤늦게 저를 찾아왔지만 2시간의 심폐소생술 끝에 결국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90세가 넘은 환자 아버지는 ‘받아줘서 고맙다’며 제 손을 꼭 잡아줬습니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김 원장이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는 이유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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