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전 거문고가 인천에 왔다기에 보러 갔다. 인천시립박물관의 ‘조선을 밝힌 인천의 지성들’ 특별전. 인천 출신의 관료이자 대학자인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제주목사에서 물러나면서 한라산의 고목을 가져다 만들었다는 거문고가 특별히 맞아주었다. 아! 저것이로구나. 병와가 한라산 단향목으로 만들었다는 그 거문고가 바로 저것이로구나! 보자마자 탄성이 일었다.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맨 꼭대기에 올려놓고 모든 걸 판단한 ‘병와 정신’의 울림이 그대로 전해 오는 듯했다.

병와 이형상은 인천 입장에서는 무척 귀한 인물이면서도 왠지 낯선 이름이다. 병와는 1653년 5월, 인천 소암촌에서 태어났다. 1680년 관직에 오른 뒤 주로 목민관으로 현장에서 일했다. 성주목사와 동래부사를 지낼 때는 관방 시설을 수축하고 백성 구휼에 특별한 공로를 인정받아 숙종 임금에게 두 차례 포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제주목사에서 물러난 뒤로는 공직을 맡지 않았다. 썩어 있는 공직사회를 혼자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걸 몸으로 부딪히며 느꼈기 때문이었으리라. 81세 일기까지 60여 차례 관직을 제수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그의 저술은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성리학, 음악, 지리, 국방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우리는 그중에 ‘강도지(江都志)’를 빼놓을 수 없다. 강화도의 국방상 중요성을 임금에게 설명하기 위한 종합 지리지 성격의 책이다. 병와의 ‘강도지’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강화도가 품고 있는 오랜 역사, 문화적 자산을 훨씬 많이 빠뜨리고 있었을 테다. 다행히도 이 ‘강도지’ 원본이 지은이의 고향인 인천시립박물관 수장고로 찾아들었다고 하니 반가울 뿐이다.

병와 이형상의 거문고는 여러 면에서 특별하다. 보통은 거문고 줄을 받쳐주는 안족(雁足)이 그 이름처럼 기러기 발 모양을 하고 있는데 병와 거문고는 용 문양이다. 용틀임하는 용이 입을 벌려 줄을 받치고 있다. 그 주인의 기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거문고 밑면의 시구(詩句) 역시 마찬가지. 단향목으로 한라산과 태백산을 연결한 뒤 국가와 백성의 안녕을 위해 아침저녁 이 거문고를 연주하겠노라는 ‘단금(檀琴)’이란 시를 새겼다. 300년 전 병와 이형상의 한라산 고목 거문고가 그 주인을 낳은 인천의 문화적 감수성마저 깨우기를 바란다.

/정진오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