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피해 여성 이혼소송중 살해 당해

남편이 거주지 알게 된 송달절차 허점

비공개 요청하지 않으면 그대로 전달

지난 1일 오전 광주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30대 남성이 배우자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사건 현장에 폴리스라인이 쳐져있는 모습. 2026.9.1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지난 1일 오전 광주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30대 남성이 배우자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사건 현장에 폴리스라인이 쳐져있는 모습. 2026.9.1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광주 능평동에서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이혼소송 중 새 거주지가 남편에게 노출된 뒤 살해되는 참극(9월2일자 7면 보도)이 발생하면서 법원에 제출한 주소가 소송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현행 송달 절차의 허점이 도마에 올랐다. 사건 관계인이 별도로 신청해야만 주소를 가리는 현행 방식을 보완해 스토킹 등 위해 가능성이 확인된 사건에서 법원의 개인정보 보호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이 알려준 주소 따라간 살인 피의자… 광주 능평동 살인사건 전말

법원이 알려준 주소 따라간 살인 피의자… 광주 능평동 살인사건 전말

비가 내린 1일 오전 7시 20분께 광주시 능평동의 한 다세대주택에 모자를 푹 눌러쓴 남성이 도착했다. 손에 흉기가 쥐어진 채였다. 남성은 자택에서 나온 여성의 복부와 가슴을 수차례 찔렀다. 중태에 빠진 여성은 성남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치료 도중 숨졌다. 현장
https://www.kyeongin.com/article/1770043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민사·가사소송은 원고가 소장을 제출하면 법원이 이를 피고에게 보내며 시작된다. 민사소송법 제255조는 소장 사본의 송달을 규정하고 있는데, 당사자의 주소는 재판 관할과 서류 송달 등에 활용돼 별도의 보호조치가 없으면 상대방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광주 사건 피해자도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경찰 보호조치까지 받던 상황이었지만 이혼소송에서 주소 비공개를 별도로 신청하지 않아 새 거주지가 노출됐다. 수차례 가정폭력을 신고하고 신변보호까지 받는 등 위해 우려가 이미 확인된 피해자조차 관련 제도를 알지 못하거나 신청하지 않으면 새 주소가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될 수 있다는 현행 절차의 맹점이 드러난 대목이다.

법원의 소송 절차를 통해 피해자의 주소가 가해자에게 알려지거나 범행에 악용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더욱이 지난해 용인 보복살인 사건에서는 성범죄 신고에 앙심을 품은 30대 남성이 피해자 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피해자 부부를 상대로 허위 보험금 청구소송을 낸 뒤 위치추적기와 흉기까지 준비해 범행했다.

주소 노출을 막을 법적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7월12일부터 시행된 개정 민사소송법 제163조는 소송관계인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고 소명된 경우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주소 등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보호조치가 ‘당사자의 신청’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특히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먼저 소송을 제기하면 피해자가 이를 알기도 전에 주소를 확인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주소보정명령’ 때문이다. 주소보정명령은 피고의 주소가 불분명할 때 법원이 원고에게 정확한 주소를 보완하도록 하는 절차로, 원고는 이를 근거로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을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연구도 이런 사각지대를 짚었다. ‘민사소송에서의 범죄피해자 개인정보 보호 강화 방안’(2025)에 따르면 현행 주민등록법상 가해자의 주민등록표 열람·등초본 교부 제한 대상은 가정폭력 피해자에 한정돼 있고, 가해자가 ‘소송 수행상 필요’를 이유로 주소를 확인하려 할 경우 이를 제한할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입법조사처는 스토킹 등 반복적인 피해 위험이 있는 범죄까지 주소 열람·교부 제한 대상을 넓히고, 소송 목적이라도 가해자의 열람을 제한할 수 있도록 법률에 명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의 경우 45개 주에서 ‘주소 기밀유지 프로그램’을 운영해 가정폭력 등 범죄피해자에게 대체 주소를 부여하고, 실제 주소는 주 정부기관만 보유한 채 소송 서류도 대체 주소로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상은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현재 법원의 개인정보 보호조치는 피해자가 직접 소송을 제기하면서 자신의 정보를 보호해달라고 신청하는 방식인데, 상대방이 먼저 소송을 걸어오는 경우에는 주소가 알려지는 것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짚었다.

SNS상에서 공유되는 소송 절차를 통한 주소 노출을 막기 위한 안내 게시물. 전자소송 알림 등록과 주민등록초본 교부 제한 신청 등의 방법이 담겼다. /X(옛 트위터) 캡처
SNS상에서 공유되는 소송 절차를 통한 주소 노출을 막기 위한 안내 게시물. 전자소송 알림 등록과 주민등록초본 교부 제한 신청 등의 방법이 담겼다. /X(옛 트위터) 캡처

상황이 이렇자 현재 SNS에서는 주소 노출을 스스로 막기 위한 자구책까지 공유되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소송이 제기되는데 대비해 전자소송 알림을 등록하거나 주민등록 등초본 교부 제한을 신청하는 등 주소가 알려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현행 소송 절차가 피해자의 주소를 알아내는 통로로 악용되는 사례가 이어지는 만큼 주소가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되지 않도록 확인 절차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이날 한국여성의전화도 성명을 내고 가정폭력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가해자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법원의 보호 절차 강화 등을 촉구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한국은 가정폭력 사건의 형사절차와 이혼 등 가사절차가 분리돼 있어 피해자가 여러 기관을 오가야 하고, 각 기관이 피해자에게 어떤 위험이 이어지고 있는지 전체 맥락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며 “개인정보 보호조치를 피해자가 먼저 알아서 신청하도록 두기보다 법원이 해당 제도를 적극 안내하고 실제 절차에서 빠짐없이 작동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혜연·이시은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