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소송 과정 피해자 새주소 가해자에 노출

수차례 신고·스마트워치 제공에도 비극 발생

비공개 절차 있지만… “미리 알기 쉽지 않아”

“자신·아이 지키려 할 수 있는 모든 것 다해…”

여러 차례 가정폭력을 신고하고 다른 거처로 피신해 있던 아내를 찾아가 살해한 현직 공무원 A씨가 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오고 있다. 경기 광주경찰서는 지난 2일 살인 및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혐의로 30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2026.9.3 /연합뉴스
여러 차례 가정폭력을 신고하고 다른 거처로 피신해 있던 아내를 찾아가 살해한 현직 공무원 A씨가 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오고 있다. 경기 광주경찰서는 지난 2일 살인 및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혐의로 30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2026.9.3 /연합뉴스

지난 1일 오전 7시20분께 광주시 능평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3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여성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성과 여성은 이혼 소송 중인 부부 사이로,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여성은 남성을 피해 친인척의 자택으로 거처를 옮겨왔다.

그러나 이혼 소송 서류가 오가는 과정에서 거처의 주소지가 남성에게 노출됐고 남성은 치밀한 계획 하에 여성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3일 살인 및 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이 남성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열렸다. 그의 구속 여부는 이날 오후 늦게 결정될 전망이다.

“제도 허점이 불러온 비극”…광주 능평동 살인 사건 유족의 이야기

“피해자 보호 제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겠죠…”

광주 능평동 살인 사건(9월1일 인터넷보도) 피해자 유족들은 이번 사고를 “제도의 허점 탓에 벌어진 일”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들은 가정 폭력 신고 접수와 이혼 소송 과정에서의 피해자 보호 제도가 부실하다고 짚어냈다.

[단독] 경기 광주서 칼부림 사건 발생… 피해여성 ‘중태’

[단독] 경기 광주서 칼부림 사건 발생… 피해여성 ‘중태’

1일 오전 광주시 능평동에서 칼부림 사건이 나 여성 피해자 1명이 중태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광주시 등에 따르면 오전 7시 20분께 광주시 능평동 한 주택 앞에서 신원미상자가 여성의 복부와 가슴을 찔러 피해자가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피해자는 성남 소재 국군수
https://www.kyeongin.com/article/1770003

수차례 가정폭력 신고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A씨의 접근을 막지 못했고, 소송 과정에서 노출된 주소로 인해 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오후 7시께 대전시의 한 장례식장 앞에서 만난 피해 여성 A씨의 동생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인 2023년부터 A씨가 수차례 본인에게 전화해 ‘SOS’ 신호를 보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5월에도 전화가 와서 ‘데리러 와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며 “아이를 데리고 나가야 하는데 아이를 놔주지 않으니 무력으로 아이를 (남편에게) 분리하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있었다더라. 그렇게 저한테 전화 올 때마다 이혼하라고 했었는데, 누나는 아이를 생각해서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해부터 수차례 남편 B씨를 가정 폭력 등으로 경찰에 신고했다. 그렇지만 출동 당시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후 결국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거처를 옮겨 살고 있었던 시점에 소송 과정에서 주소가 노출되며 변을 당했다.

A씨 동생은 “별거 후 처음에는 아이는 부모님댁으로 보내놓고 따로 지냈는데, 아이가 떨어지기 싫어하고 하니 (새 거처에서) 누나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길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놓는 식으로 몇 달간 지냈다”며 “(사고 당일은) 하필 제가 해외 출장으로 (곁에) 없을 때였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한국에 소송을 해 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피해자 당사자가) 개인정보 보호 신청을 안해서 주소가 가려지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원래 같이 살던 집에서) B씨에게 퇴거 요청을 하고, 경찰에도 보호 요청을 했는데도 스마트워치도 의미 없었지 않냐”고 토로했다.

현행 제도 안에서 가능한 여러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사고라는 점에서 유족의 분노는 깊었다.

유족 측은 입장문을 통해 가정 폭력 피해자 보호 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다시 한번 언급했다. 이들이 낸 입장문에는 “이혼 소송 전에 주소 비공개를 위한 별도의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한다”며 “이혼 소송을 처음 겪는 평범한 사람이 이런 제도를 미리 알고 필요한 절차를 하나하나 찾아 신청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내용이 담겼다. 유족 측은 “자신과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던 고인이었기에 주소가 노출됐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고 원통하다”며 “고인의 죽음이 또 하나의 안타까운 사건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가정 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실제 피해자의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돌아봐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2일 대전시의 한 장례식장에 지난 1일 광주시 능평동의 다세대주택에서 남편에게 찔려 숨진 A씨의 빈소가 마련됐다. 2026.9.2 /이영지기자 bbangzi@kyeongin.com
2일 대전시의 한 장례식장에 지난 1일 광주시 능평동의 다세대주택에서 남편에게 찔려 숨진 A씨의 빈소가 마련됐다. 2026.9.2 /이영지기자 bbangzi@kyeongin.com

미국, 45개주서 민사소송 기밀유지, 대체 주소

일본, 보호대상 주소 직접확인 아닌 기관 관리

독일, 소송제기후 위험 여부 살핀 뒤 정보 제공

‘민사 소송’ 악용 방지법 마련한 해외… 가해자·피해자 개인정보 어떻게 처리하나

해외 주요국은 보호조치 대상자의 실제 주소를 소송 상대방에게 직접 알려주지 않고도 재판을 진행할 수 있도록 별도의 장치를 두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발표한 ‘민사소송에서의 범죄피해자 개인정보 보호 강화 방안’에 따르면, 미국은 45개 주에서 ‘주소 기밀유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용자에게 실제 집주소 대신 대체 주소를 부여하고 실제 주소는 주 정부기관만 보유한다. 이용자가 피고가 된 경우 원고는 소장에 피고의 대체 주소를 기재해 서류를 보내면 주 정부가 이를 받아 피고에게 전달한다.

일본도 가정폭력·스토킹 등 보호조치를 먼저 신청해야 한다는 점은 한국과 비슷하다. 다만 이후 주소 확인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은 피고 주소를 모르면 법원이 원고에게 주소보정명령을 내리고, 원고가 이를 근거로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아 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은 보호조치 대상자인 피고의 주소를 원고가 직접 확인하지 못하도록 하고 법원이 관계기관에 조회해 주소를 확보한다. 해당 주소가 담긴 서류의 열람도 직권으로 제한할 수 있다.

독일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법원이 관계기관(주민등록청)을 통해 주소를 확보해 서류를 송달한다. 한국과 일본은 기본적으로 당사자의 신청이 있어야 하지만, 독일의 주민등록정보 정보차단은 주민등록청 직권으로도 가능하고 경찰·검찰·법원도 해당 기관에 이를 지시할 수 있다. 소송이 제기되면 주민등록청은 위험 여부를 살핀 뒤 법원에 정보를 제공하며, 해당 주소가 보호대상이라는 사실도 함께 알린다.

/이시은·유혜연·이영지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