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 亞~유럽잇는 새 해상교통로 관심
항만, 물류 종착지 아닌 국가 전략 플랫폼
대한민국 해양전략 다시 세우는 출발점돼야
세계에는 훌륭한 항구를 가진 나라가 많다. 그러나 항구가 크다고 모두 해양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다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그 바다에서 만들어지는 가치를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결국 바다의 가치는 자연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전략이 부여하는 것이다.
최근 북극항로를 둘러싼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북극해 결빙 기간이 짧아지면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새로운 해상교통로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물류 혁신과 항만 활성화 등 경제적 기대가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극항로를 운항거리 단축과 물류비 절감만으로 바라본다면 더 중요한 본질을 놓칠 수 있다.
오늘날 북극은 더 이상 얼음으로 덮인 미지의 공간이 아니다. 세계 강대국들이 국가의 미래를 걸고 경쟁하는 새로운 전략 무대가 되고 있다.
미국·캐나다·아이슬란드·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러시아 등 8개 회원국과 원주민 상임참여자, 그리고 옵서버로 구성된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는 출범 당시 환경보전과 지속가능한 발전, 원주민 보호를 내세웠다. 하지만 지금 북극의 현실은 다르다. 국가의 이해관계와 안보, 자원 확보가 국제협력보다 앞서는 모습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러시아는 북극항로를 단순한 항로로 보지 않는다. 국가안보와 자원개발, 군사전략을 하나로 묶어 움직이고 있다. 쇄빙선과 항만, 에너지 개발, 군사기지까지 하나의 전략 아래 운영하는 모습이다. 중국도 ‘빙상 실크로드’를 앞세워 항만과 물류, 에너지와 연구개발에 꾸준히 투자하며 북극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이제 북극항로는 경제만이 아니라 외교와 안보, 자원과 금융이 함께 맞물리는 전략 공간이 됐다.
우리 역시 북극항로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항로 개척과 물동량 증가, 경제적 파급효과에 논의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항만 인프라와 해운산업은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해양강국은 선박이 많이 드나드는 나라가 아니라 바다에서 만들어지는 부가가치를 자국의 산업과 금융, 기술과 일자리로 연결하는 나라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항만 자체가 아니라 항만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해양 생태계다. 해운기업의 본사와 해양금융, 선박보험, 해사법률, 선박관리, 조선과 기자재, 친환경 연료, 해양데이터, 선박 MRO, 극지기술 연구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바다는 국가의 경쟁력이 된다. 항만은 물류의 종착지가 아니라 국가 전략이 시작되는 플랫폼이어야 한다.
북극항로는 해양안보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극지는 여전히 기상과 해빙, 구조·구난, 통신 인프라 등 많은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에너지 수송로와 국제 해상교통로의 안전은 곧 국가경제와 직결된다.
북극항로 전략도 경제정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외교와 국방, 산업과 과학기술이 함께 움직이는 국가전략이어야 한다. 특히 해군은 원양작전과 해상교통로 보호, 구조·구난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해양력을 떠받치는 핵심 축이다. 해양안보는 더 이상 군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안정적인 공급망과 국가경제를 지키는 기반이다.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인 해양국가다. 하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바다를 어업과 물류, 항만의 공간으로만 바라봤다.
이제는 생각을 바꿀 때다. 바다는 국가의 미래를 여는 전략 공간이다. 교육과 문화, 산업과 안보, 금융과 외교를 잇는 중심축이다. 북극항로도 새로운 길을 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해양전략을 다시 세우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해양강국은 항구의 규모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바다에서 만들어지는 가치를 누가 기획하고, 누가 지키며, 누가 국가의 자산으로 키워 가느냐다. 중요한 것은 결국 바다의 가치는 바다가 아니라 급변하는 해양질서의 패러다임을 이끌어 가는 국가차원의 해양전략이 수립될 때 진정한 바다의 가치는 부여되는 것이다.
/박천억 SK오션플랜트 고문·前 해군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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