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수동적 개항으로 유형 무형의 문화자산이 가장 크게 빠르게 붕괴되고 있어 인천향토사를 쓴다.” 향토사학자 서계당 이훈익(1916~2002) 선생이 향토사 저술 8권 가운데 제2집 ‘인천지지(仁川地誌·1986)’ 서문에 남긴 문장이다. 경인일보가 엮어낸 ‘인천인물100인(2009)’ 중 한 명인 이훈익 선생에게 인천사랑은 숙명이었다. 부평향교 전교를 지낸 부친의 유지를 이어, 아들 이원규 소설가와 함께 2대에 걸쳐 인천을 기록했다. 국제공항과 항만, 마천루가 교차하는 인천은 흔히 변화와 역동성의 도시로 기억되지만, 그 바닥에는 오랜 세월 묵직하게 자리를 지켜온 뿌리가 있다. 그 유산을 지켜온 이들이 오늘의 인천을 있게 한 진짜 주인공일 테다.
그 뿌리 가운데 하나, 이훈익 선생을 배출한 연안이씨 장령공파 연희종중이 51번째 ‘인천 뿌리깊은 가문’에 이름을 올렸다. 입향조 22세손 이중원이 지금의 서구 연희동에 터를 잡은 것이 300년 전이다. 후손들은 이 땅을 떠나지 않고 집성촌을 이루며 대를 잇고 있다. 김포 감정동에 남아 있는 ‘연안이씨 13정려각’은 6대에 걸친 충신과 효자, 절부의 기개를 오늘에 증언한다. 연희종중은 쟁쟁한 인물을 끊임없이 배출했다. 이번 선정을 이끈 이원규 작가는 잊힌 독립투사를 평전으로 되살려냈다. 그뿐 아니라 서구청장을 지낸 이훈국, 미스코리아의 산실로 불린 세리미용실 이훈숙, 영종도 파라다이스호텔과 서울로7017을 설계한 건축가 이교석까지. 이들이 남긴 발자취는 가문의 영광을 넘어 사회를 움직이는 영향력이었다.
사람과 자본이 쉼 없이 오가는 ‘유목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정주의 가치는 자칫 잊히기 쉽다. 도시가 정체성을 잃지 않고 버티려면 중심을 잡아줄 구심점이 필요하다. 인천의 51개 뿌리깊은 가문이 지켜온 역사와 전통은 인천이라는 도시가 표류하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뼈대와 같다. 가문의 족보는 문중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지역이 걸어온 문화적 서사다.
‘인천 뿌리깊은 가문’은 시가 2016년부터 정성스럽게 다져온 정체성이다. 선정의 가치가 가문의 영예와 자부심에만 머물지 않았으면 한다. 머지않아 100가문에 이를 것이다. 가문의 발자취를 책자로 기록해두거나 별도 웹사이트 공간에 담아내, 시민 누구나 펼쳐볼 수 있는 지역의 교과서로 재탄생시킬 때다. 인천 뿌리깊은 가문이 곧 인천의 역사다.
/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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