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은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바라

희망에 부응하려는 초심 그대로라 믿어

이제 집권 1년 넘겨… 아직 늦지 않았다

윤인수 주필
윤인수 주필

자유민주주의 체제 나라의 번영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는 선출된 정권들이 대를 이어 성공해야 한다. 이념적 지향이 다른 정당들의 교대 집권이 필연적인 정치제도에서 한 정권의 실패는 국가 DNA 구조의 변이나 탈락을 일으켜 국가 성장의 맥락을 끊고 국민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민주 시민들이 지지 정당을 달리하면서도 선출된 정권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정권의 성공을 바라는 이유다.

정치 양극화가 심각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바랄 것이다. 정부의 실패는 곧 국가의 쇠퇴이자 국민의 불행이다. 쥐 잡는데 흑묘 백묘를 가릴 이유가 없듯이 상식적인 민주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정권의 색깔이 아니라 성공한 정부이다. 이재명 정부를 바라보는 다수 국민의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확신한다. 이재명 정부 선택 여부를 떠나 정부가 사회안전과 민생안정에 성공해 국가발전의 역사적 맥락을 이어가길 고대할 것이다. 정권의 연장과 교체만 학수고대하는 양극적 팬덤의 무게는 과장된 허상이다. 이재명 정부가 성공하려면 정권을 실용적 관점으로 인식하는 대중을 매료시킬 정권의 명분이 뚜렷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은 역대 정부들의 시대적 대의명분의 축적으로 발전해왔다. 이승만은 대쪽 같은 자유민주주의 신념과 명분으로 한반도 반쪽에나마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고, 6·25 전쟁에서 영토와 국민을 보전했다. 박정희는 산업화를 명분으로 대한민국 경제독립의 기반을 다졌다. 김영삼은 문민정부를 대의명분으로 앞세워 군정의 잔재를 청산했다. 김대중은 한반도평화론으로 정상국가의 자존감을 세계에 심었다. 노무현은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비주류의 한계를 극복해 ‘노무현 정신’이라는 유산을 남겼다.

명분이 쇠하면 정권은 흩어지고 업적은 희미해진다. 3·15 부정선거로 자유민주주의 명분을 잃은 이승만은 하야했다. 박정희는 파독광부 앞에서 흘린 눈물로 고조됐던 산업화 명분이 장기독재로 흐려지면서 부하에게 저격당했다. 김영삼의 문민정부는 IMF 사태로 파탄난 민생 때문에 빛을 잃었다. 김대중의 한반도평화론은 내부의 대북 시선차이 때문에 논쟁적이고, 노무현 정신은 진영에 갇혀 왜소해졌다.

시대의 명분을 선점한 보수·진보 정권이 앞선 정권의 결함을 보완해 국가 DNA를 진화시켜 대한민국을 정상국가 반열에 올려놓은 한국 정치의 역사적 맥락이 어느 순간 단절됐다. 이명박은 4대강, 청계천 복원, 미국산 쇠고기 파동만 기억난다. 박근혜는 부친의 업적과 모친의 향기에 가려있다 탄핵당했고, 문재인은 정권의 대의명분을 노무현 정신으로 대신한 패착으로 정권의 정체성이 모호했다. 사람이 아니라 조직에 충성한다던 윤석열은 개인적 명분으로 위헌 사범으로 전락했다.

당대의 대의에 정권의 명분을 등치한 대통령과 정권의 시대가 단절된 이후, 정권들의 통치는 치졸해졌다. 국민을 매료시킬 명분이 없으니, 대통령이 진영에 갇혔고, 진영의 세력과 팬덤이 대통령과 정권의 통치를 사적 이익과 집단적 감성으로 오염시킨다. 진영과 세력과 팬덤이 대통령들을 소비한 듯한 착각이 들고, 어렵게 도달한 정상국가의 DNA 손상을 걱정할 지경이 됐다.

지난해 6월 대선 직후 출고한 본란의 제목이 ‘다 이룬 이재명 대통령의 초월적 리더십’이었다. ‘자아실현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나라와 국민을 향한 고결한 공공기여 의지만 실행하는 자아초월의 단계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썼다. 다시 강조하지만 국민은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바란다. 국민의 희망에 부응하려는 대통령의 초심도 그대로라 믿는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통치가 진영의 철조망에 갇혀 전체 국민에 이르지 못한 결과로 봐야 한다. 진영을 초월한 시대의 대의와 명분을 세워 국정 각 분야의 정합성을 국민적 수준으로 회복해야 벗어날 수 있는 위기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규범과 도덕이 체화된 국민이다. 국민의 집단 지성과 감성이 대의와 명분의 수장고다. 대통령과 정부가 대의와 명분의 정치시대를 복원해 성공하기를 바란다. 이제 집권 1년을 막 넘겼다. 늦지 않았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