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환갑잔치… 주민 삶의 기억 소환

 

문화재단·시립박물관·옹진군 협업

역사·문화유산·생활환경 등 기록

직접 들은 이야기로 옛모습 소개

제공받은 흥미로운 사진들도 수록

인천 섬 생활사 조사 보고 제4·5집 영흥도Ⅰ·Ⅱ 안내 포스터. /인천문화재단 제공
인천 섬 생활사 조사 보고 제4·5집 영흥도Ⅰ·Ⅱ 안내 포스터. /인천문화재단 제공

‘섬’이지만 섬이 아닌 섬이 있다. 2001년 영흥대교 개통으로 육지와 연결된 영흥도(靈興島) 얘기다. 인천 영흥도는 섬으로 이루어진 기초자치단체 옹진군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섬이다. 2025년 10월 말 기준 5천499명에 이른다. 또 면적은 25.83㎢로 옹진군에서 백령도 다음으로 면적이 크다. 행정리(里)는 11개로 18개인 백령도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2024년과 2025년 발간된 인천 섬 생활사 조사보고 제4집 ‘영흥도Ⅰ’과 제5집 ‘영흥도Ⅱ’는 섬 고유의 특성이 바뀌거나 사라져 가는 모든 것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1권이 영흥도의 역사·해양환경·문화유산을, 2권은 주민들의 기억과 삶의 모습을 통해 영흥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핀다. 인천문화재단과 인천시립박물관, 인천시 옹진군이 협업해 조사단을 꾸렸고 그렇게 기록으로 남았다.

주탑 공사 중인 영흥대교.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제공
주탑 공사 중인 영흥대교.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제공

배를 빌려 병원을 가야 했던 섬에 이제는 자동차가 다니고 있다. 과거에는 농사를 짓고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고, 배를 타고 다른 섬과 육지를 오갔다. 결혼식과 장례식에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했고, 잔칫날이면 집집마다 음식과 물건을 나눴다. 지금의 영흥도는 사뭇 다르다. 주말이면 관광객이 몰려드는 바람에 교통체증이 빚어진다. 병원에 가는 길도 훨씬 편해졌고 섬의 산업은 어업과 관광업으로 폭이 넓어졌다. 보고서는 이런 변화를 한눈에 보여준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주민들의 말, 즉 기억이다. 보고서에는 영흥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주민들을 직접 만나 들은 이야기가 기록됐다. 통계나 문헌만으로는 알 수 없는 영흥도의 모습이 주민들의 기억을 통해 소환됐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영흥도의 옛 결혼식 모습이다. 1960년대 영흥도에서는 예식장에서 식을 올리는 육지와 달리, 집 앞이나 학교, 교회가 예식장 역할을 했다.

집 앞에서 병풍을 치고 결혼식을 올린 임병미씨 부모님. /임병미씨 제공
집 앞에서 병풍을 치고 결혼식을 올린 임병미씨 부모님. /임병미씨 제공

흥미로운 사진이 많이 수록됐다. 임병미씨(1969년 출생)의 부모는 집 앞 공터에 병풍을 세워 결혼식을 했다. 신랑과 신부는 양장과 드레스를 입었고, 하객들은 한복과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모습이다. 섬에서도 당시 도시에서 유행하던 새로운 결혼식 문화가 들어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섬마을 잔칫집 풍경도 흥미로웠다. 섬 잔치는 지금보다 훨씬 큰 행사였다. 강윤모씨(1950년생)는 1972년 큰아버지의 환갑잔치가 무려 일주일 동안 이어졌던 기억을 증언했다. 돼지를 잡고 낙지를 많이 사서 음식을 마련했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잔치를 도왔다.

주민들은 아파도 병원에 쉽게 갈 수 없었다. 영흥도에는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병원이나 한의원, 조산원이 없었다. 응급환자가 생기면 수협이나 어선의 배를 돈을 주고 빌려 육지로 나가야 했다. 주민들은 이를 ‘독선시켜서 간다’고 표현했다.

홍인희 인천문화재단 정책연구실 과장은 “영흥도의 삶과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보고서를 완성했다”면서 “20년, 50년, 100년 뒤 다른 조사단이 영흥도를 조사할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