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속 물류센터 AI관제시스템
노동자 수면·감정 제어, 생산성↑
저자, 불면 사회 분석·대안 제시
숙면 이끄는 건 사랑·온기·신뢰
“렘수면이 사라지면 꿈이 사라진다. 꿈이 사라지면 감정 처리능력이 퇴화한다. 전전두엽과 편도체 사이의 연결이 약화 되면서 감정의 뉘앙스가 사라지고, 결국 기쁨이나 슬픔이 아니라 무감각만 남는다. 이 남자가 허전하다고 느끼는 것은 감정 퇴화의 초기 단계일 수 있었다.”
얼핏 의학 서적의 한 부분처럼 읽히지만 실은 소설 ‘아르고스’(이승형 작)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가히 의학 소설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르고스’에는 의학 혹은 생리학적 분석이 넘쳐난다. 디테일한 묘사와 탁월한 구성, 시사적인 메시지가 돋보이는 이 소설은 제3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에도 아르고스가 등장한다. 오디세우스가 전쟁에 나가기 전 갓 태어난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선물한 강아지 이름이 아르고스다. 세월이 지나 노견이 된 아르고스는 20년 만에 귀향한 주인을 유일하게 알아본 뒤 마침내 숨을 거둔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관객들을 울린 장면이다. 톰 홀랜드(텔레마코스 분)는 아르고스가 최후를 맞는 장면을 찍은 뒤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뒷얘기를 전한다.
본디 아르고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4개의 눈으로 사방을 보며 잠을 자지 않는 타고난 감시자였다. 후대로 가면서 그 불면의 성질과 여러 개의 눈이라는 설정이 점점 확대되어 온몸에 눈이 100개나 달린, 언제나 깨어있는 거인으로 변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아르고스는 물류센터의 인공지능(AI) 관제시스템이다. 소설은 잠과 감정을 잃어가는 노동자들과 24시간 멈추지 않고 컨베이어 벨트를 제어하는 AI에 관한 이야기다. 아르고스는 초저주파(20kHz 이하)를 이용해 노동자들의 수면욕과 감정을 제어한다. 물류센터의 생산성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물류센터 직원들은 잠을 자지 않으며 오로지 일만 한다. 효율성과 이윤 추구에 경도된 인물들과 노동자를 관리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아르고스는, 오늘날 스스로를 극단으로 몰아붙이는 현대인의 초상을 오롯이 보여준다.
현대인의 삶에서 수면은 거대한 화두다. 24시간 언제든 모두와 연결되고, 어디서든 업무를 볼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잠들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마저 잃게 된 탓이다. 고도로 발전된 생산의 사이클 속에서 어느덧 인간의 몸과 마음은 과노동에 점령당하기에 이르렀다.
소설 ‘아르고스’는 물류센터에서 수면과 감정, 영혼을 잃어가는 이들을 핍진하게 묘사함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 내재화된 자본주의의 괴물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사회학자 김찬호는 ‘무수면 사회’를 통해 불면 사회의 구조를 샅샅이 살핀다. 저자는 우선 묻는다. “잠을 못 자는 것은 과연 개인의 문제일까?”
우리는 흔히 불면의 원인을 예민한 성격이나 잘못된 생활 습관에서 찾는다. 잠은 가장 사적인 행위이지만, 누가 얼마나, 편안하게 잘 수 있는지는 한 사회의 노동과 경쟁, 돌봄의 구조에 의해 달라진다.
필자 역시 이즈음 불면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대인관계에 균열이 나고, 경제적 압박으로 인한 불안이 더해진 결과다.
그러나 잠 못 이루는 이가 어디 필자뿐이겠는가. 우리는 어느덧 알고리즘이라는 파놉티콘에 갇힌 지 오래다. 그에 더해 AI가 방출하는 초저주파에 노출돼 차츰 잠과 감정을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경계해야 할 일이다.
‘무수면 사회’는 과연 대안을 제시하고 있을까. 저자는 불면 사회의 구조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그의 결론은 의외로 평범하다. ‘외로운 여자들은 결코 울리지 않는 전화통이 울리길 기다리며’(최승자 시 ‘외로운 여자들은’) 잠 못 들지만, 깊은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다’(함민복 시 ‘가을’)고 고백한다.
숙면으로 이끄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과 우정, 온기와 신뢰인 것이다.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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