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학원 닫고 새 길 찾은 최수이 대표
독서모임 등 동네 이웃들과 소통 ‘행복’
“문화 모세혈관… 이 관계 오래갔으면”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삶을 사랑할 것을 이야기하는 책 ‘그리스인 조르바’. 김포 장기동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던 최수이 대표가 코로나19로 학원 문을 닫고, 대신 그 자리를 책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책이었다.
화자와 조르바가 시간과 돈을 들인 일에 실패한 뒤 좌절하거나 슬퍼하기보다 홀가분하게 자유를 느끼며 춤을 추는 장면은 최 대표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었다.
평소였다면 용기 내지 못했던 일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책방 짙은’을 열게 됐다. 곳곳에 좋아하는 것들을 늘어놓고 이 공간 속에서 서로 어울리며 짙어지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은 책방 이름도 그렇게 탄생하게 됐다.
그렇다면 최 대표는 책의 어떤 점에 빠져들었을까.
그는 “독서모임을 하며 생각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경험이 좋았고, 문학의 함축성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책방을 열고 처음으로 뭔가가 된 것 같았다”고 했다.
그 전에도 여러 일을 해봤지만, ‘나’라는 정체성이 아닌 그저 직업에 머물러 있었던 탓이었다. 그는 “책방지기가 되고 난 후 ‘책방해요’라는 말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며 “나한테 맞는 옷을 처음 찾았구나 싶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고 웃어보였다.
‘책방 짙은’에서 열 개 가량의 독서 관련 모임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최 대표는 동네 책방은 문화의 ‘모세혈관’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동네에 있는 책방을 좋아해 주는 손님들이 이곳에서 신나게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면 단순히 책을 소개하거나 파는 곳을 넘어 서로가 소통하는 곳이 된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최 대표는 한 권의 책을 백명의 사람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에게 백 권의 책을 파는 책방지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적어도 한 명이 책방을 백 번 찾아야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한 번 왔다가는 공간이 아닌, 계속해서 오고 싶은 ‘책방 짙은’이 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책방이었으면 합니다. 문화적으로 또 관계적으로 취향을 나누고 얻어갈 수 있는 ‘짙은’이 있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해요. 동네는 ‘짙은’이 있어 좋고, ‘짙은’은 아껴주는 분들이 있어 감사해하는 이 관계가 오래가길 바랍니다.”
[책방 짙은이 추천하는 책]
35년 압축공 남긴 깊은 질문
폐지 속에서 찾은 삶의 의미
■ 너무 시끄러운 고독┃보후밀 흐라발 지음. 문학동네 펴냄. 144쪽
현대 체코 문학의 거장인 보후밀 흐라발의 장편소설인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저자가 ‘나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고 할 만큼 필생의 역작이자 정수가 담긴 작품이다. 한탸는 35년간 폐지 압축공으로 일해왔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폐지 속에는 인류가 쌓은 지식과 교양이 가득한 책들이 함께 들어있었고, 그는 파괴될 운명인 폐지들의 매력에 이끌린다. 그저 종이 정도로만 취급받게 된 책을 향한 인간의 정신 상태를 섬세한 문체로 그려낸 작품은 인간과 노동, 삶의 방식, 실존에 대한 고뇌 등을 깊이있게 보여준다. 무엇인가를 좋아하며 점차 짙어지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면서도, AI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속도보다 그 안의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하고자 함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책이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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