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미친 짓이다’(2002·감독 유하). 영화가 개봉한 지 스무 해가 넘었다. ‘애인? 아내? 어떤 걸로 할래.’ 카피부터 도발적이다. 연애와 결혼을 분리시킨 현실 로맨스가 화제였다. 가수 김연자는 ‘아모르파티’(2013)에서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며 싱글들을 다독였다. 당시엔 파격이었지만, 지금 오십 줄에 접어든 세대에겐 그저 담담한 현실이다.

50대 열 명 중 한 명은 ‘생애 미혼’이다. 93만4천명이 평생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2016년 28만1천명, 3.4%에서 10년 만에 3.3배나 늘었다. 1970년대생, 이른바 ‘X세대’다. 고도성장기에 유년을 보내고 입시전쟁을 치렀다.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를 들었고, PC통신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졸업 후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사회초년생 때 IMF 외환위기를 맞닥뜨렸다. 정리해고와 대량실업을 코앞에서 목격했다. 결혼 적령기였던 2000년대에는 고용이 흔들렸고 집값도 뛰었다. 직장에서 자리잡을 만하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아무도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했다. 결혼은 자꾸 뒤로 밀렸다. 마흔 고개를 넘어, 어느새 50대 무혼족(無婚族)이 됐다.

50대는 ‘신인류’이자 ‘첫 개인주의 세대’로 불렸다. 가부장제와 양성평등 사이,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 그 길목에 서 있었다. 일에 치여서, 혹은 경제적으로 홀로서지 못해서. 저마다 무혼의 사정은 다르다. ‘좋은 학교-안정된 직장-결혼-출산’이라는 전통적인 인생 공식은 버렸다. 대신 ‘직장-소득-자기관리-행복’이라는 새 방정식을 찾았다.

그렇다고 혼자가 늘 홀가분한 건 아니다. 아플 때 유독 서럽다. 병원 문턱부터 보호자를 따져 묻는다. 수술 동의서 앞에서는 가족 없는 몸이 난감해진다. 의료시스템 자체가 결혼과 가족을 전제로 짜여 있는 탓이다. 정책은 이들에게 냉랭하기만 하다. ‘청년’이라는 이름표를 붙인 지원책이 줄줄이 쏟아진다. 결혼과 출산 전후 장려금, 육아 지원까지 세밀하다. 하지만 무혼족은 회사에서도 가족수당조차 못 받는다.

결혼 여부라는 잣대가 이들을 가로막아 온 건 아닌지 돌아볼 때다. 이제는 가족정책의 기준을 확장해 혼자 나이 들어가는 무혼족도 포용해야 한다. 돌봄과 주거, 노후소득까지 사각지대 없이 전 연령에 걸쳐 촘촘한 설계가 필요하다. 무혼은 선택의 결과일 뿐 소외의 이유가 될 순 없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