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지만 ‘가정’ 못 이룬 우리네 집

별거·암 선고… 위기 속 흐르는 유쾌함

영화 ‘철들 무렵’ 스틸컷. /(주)인디스토리 제공
영화 ‘철들 무렵’ 스틸컷. /(주)인디스토리 제공

지난 16일 개봉한 영화 ‘철들 무렵’은 한 가족의 이야기다. 운동권 출신으로 지금은 용접일을 하며 혼자 살고 있는 남편 철택(기주봉)과 평온한 노년을 즐기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는 아내 현숙(양말복), 단역 배우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딸 정미(하윤경), 그리고 현숙의 생모인 구순을 맞은 옥남(원미원)까지 ‘가족’이라는 하나의 울타리로 엮인다.

그런데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의 형태가 조금은 일반적이지 않다. 철택·현숙 부부는 20년 넘게 별거 중이며, 아빠와 단둘이 성장한 정미는 이제는 독립해 혼자 살고 있다. 옥남 역시 혼자서 잘 살아가고 있다. 가족(家族)이라 부를 수 있지만 한 가정(家庭)은 아니다. 일반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부자연스럽거나 비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위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내며 버텨왔을 이 가족에 또 위기가 찾아온다. 철택이 의사로부터 4기 암 선고를 받는 것이다. 딸 정미는 마치 연기를 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부친의 간병인을 자처하며 책임감 있게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이 가족의 시급한 위기는 암이라는 질병이나 죽음이 아니다. 딸 정미는 카드값이 연체될 위기이며 아버지의 통장 잔고는 300만원이 전부다.

영화 ‘철들 무렵’ 스틸컷
영화 ‘철들 무렵’ 스틸컷

홀로 사는 현숙 또한 위기가 찾아온다. 현숙의 형제들은 곧 다가올 모친의 구순 잔치 기획과 모친 부양을 떠넘기려 전방위적인 압박을 펼친다.

빈곤과 돌봄, 부양과 간병 등의 문제 등 가족들의 비루한 현실을 다루면서도 정승오 감독은 이를 결코 무겁거나 우울하고 슬프게 그려내지 않는다. 오히려 ‘웃픈’ 유쾌함이 영화 전반을 흐른다.

영화 속 가장 통쾌한 장면은 옥남의 선택이다. 자식들과 함께 살자는 제안에 대한 90세 옥남의 반응이 신선한 충격을 준다. 옥남은 평생 자식들 뒤치다꺼리를 하고 말년에 남편 병수발까지 들어야 했다. 이제 혼자 편하게 삶을 살아보겠다며 옥남이 내뱉는 대사가 묵직하다. “이제 나한테 니들은 과거야. 이제 나도 미래를 좀 그려봐도 되지 않겠냐?”고 선언한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는 시점 가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깊이 있게, 또 유쾌하게 되짚어 보게 만드는 반가운 수작이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