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시간 자기 전공 공부한 학생

분노 대신 “학생은 언제나 옳다”

비난하는 순간 선생 존엄 무너져

참된 교육자, 자유인 길러내는 것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바젤대에서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던 니체는 어느 날 한 학생에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관해 물었다. 지목받은 학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강의실에는 한참 동안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니체는 아무 말 없이 강의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주 잘 설명했어. 우리에게 아킬레우스의 방패는 이런 침묵 같은 거겠지.”

이 일화는 대중 강연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인상적인 순간으로 자주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니체의 강의록이나 편지 어디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후대의 누군가가 니체를 빌려 창작해 낸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 허구 뒤에 숨어 있는 맥락은, 무지로 얼어붙은 강의실의 침묵을 앎에 대한 경이의 순간으로 바꾼 교수자의 탁월성을 드러낸 데 있기 때문이다.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답을 뱉어내는 기계적 반사의 시대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는 침묵은 질문의 무게를 견디며 자기만의 답을 만들어 나가는 사유의 시간이라 하겠다. 하지만 현실의 강의실에서 마주하는 침묵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많은 학생이 무지가 폭로될까 두려워 숨고 싶어 하고, 강의실은 이내 무의미한 정적에 잠긴다. 이유 모를 침묵과 긴장감을 깨치고 제자의 불완전함을 깊이 있는 사유로 격상시키는 건 어떤 노련한 교수자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어느 날 1교시, 강의실 문을 열었을 때 전등이 꺼진 채 컴컴한 어둠이 깔려 있었다. 학생들이 이미 와 있었지만 아무도 불을 켜지 않은 채 그저 어둠 속에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평소처럼 인사를 건네는 대신 들고 간 가방을 열고 부스럭거리며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이어 윗도리와 바지의 호주머니를 뒤지고 급기야 교탁 위아래를 살피고 강의실 바닥을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내심 누군가가 “뭘 찾으세요?” 하고 물어주기를 바랐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다만 모두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시선만큼은 고정되었다.

그때 학생들을 향해 물었다. “뭘 찾고 있느냐고? 그래 찾고 있어. 의미를 찾고 있지. 나는 의미에 굶주렸거든. 대낮에 등불을 들고 사람을 찾았던 디오게네스처럼.” 그게 내가 불 꺼진 강의실에서 스마트폰 불빛에 갇혀 있는 학생들에게 던진 화두였다. 그렇다고 그날 이후로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져 강의에 몰입하는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현실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날의 몸짓은 무력한 어둠 속에서 선생으로서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작은 몸부림이었다.

축제로 학교가 어수선하던 날이었다. 결석한 학생이 늘었고 토론 준비를 해오기로 한 학생마저 오지 않았다. 별수 없이 토론 수업을 강의로 바꾸고 학생 사이를 걸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한 학생이 자기 전공책을 펼쳐놓고 공부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속에서 분노가 막 튀어나오려던 찰나, 막상 목구멍을 넘어온 말은 “학생은 언제나 옳다”였다. 학생은 급히 책을 집어넣으며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학생은 언제나 옳다는 말은 학생의 행동이 매 순간 정당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선생에게 학생이 ‘존재론적으로 옳다’는 선언이다. 학생이 없으면 선생이라는 존재 역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약속을 깨뜨린 제자나 내 시간에 다른 교과 공부를 하는 학생에게 미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인간적 현실이지만, 그 미움에 잠식되어 학생을 비난하는 순간 선생의 존엄도 함께 무너진다.

결국 참된 교육자는 무언가를 억지로 뜯어고치고 주입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단단한 의견을 광장에 툭 던져두고, 눈 밝은 학생이 스스로 무언가를 건져 올리기를 기다릴 뿐이다. 누군가의 각본에 길들여진 인형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는 ‘자유인’을 길러내는 것이야말로,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을지라도 제자를 지킴으로써 끝내 나를 지켜내는 교육자의 진짜 자질이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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