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탄약은 누가 고지까지 날랐을까
유엔군초전기념관 기획전… 내년 8월까지
오산서 처음 조명되는 숨은 전쟁사 ‘한국노무단’
7개 주제로 풀어낸 KSC부대의 탄생과 희생
“이 전시를 걸어오는 동안, 여러분은 그들의 발자국 위를 걸으셨습니다”
오산 유엔군초전기념관 체험관 전시실 한가운데, 낡은 지게가 놓였다. ‘전쟁과 지게’, 어울리지 않는 두 소재가 만난 인연은 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SC 부대는 우리나라 말로 ‘한국노무단’으로 불린다. 이름이 생소하지만, KSC부대의 역사는 한국전쟁에서 비롯됐다.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전쟁 사흘만에 서울이 함락됐다. 열세에 있던 전쟁 속에 유엔군의 참전이 결정됐고, 미국을 필두로 수많은 국가의 군인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군인들과 함께 전쟁물자도 쏟아졌는데, 탄약과 식량, 유류, 차량, 통신·병기장비, 피복 등 전쟁 직후 수송된 물자만 약 31만톤에 달했다. 물자는 지급됐지만, 해방직후였던 당시는 도로 하나 제대로 놓인 것이 없이 열악했다. 험준한 산악지대에 주로 있던 전쟁터에 물자를 보급해야 하는데, 철도와 항공 수송 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때 탄생한 것이 ‘한국노무단(KSC)’, 사람의 손과 등에 의지해 물자를 옮기는 방법이었다.
현재 기획전시 중인 ‘지게에 짊어진 평화, KSC부대’는 전쟁의 무게를 온 몸에 짊어지고 이 땅의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쟁의 무게’, ‘물자수송’ ‘KSC부대의 탄생’ ‘증언’ 등 7개로 구성된 전시는 한국전쟁 속에서 KSC부대의 탄생과 역할을 비롯해 그간 조명되지 못한 희생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특히 KSC부대원들이 한국전쟁에서 겪은 상황을 증언한 내용과 사진들이 함께 전시됐다. 전시관 한 가운데 놓인 지게는 KSC부대의 상징이다. 30㎏가 넘는 전투식량을 짊어지고 해발 800m에 이르는 산악 지형을 넘고, 75㎜무반동총을 사격진지로 옮기려 산을 오르는 모습 등 전투복도 입지 못한 KSC부대원들이 각종 물자를 지게에 지고 높은 산길을 오르는 모습은 전시장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온종일 국군을 위한 참호를 팠습니다. 낮에는 미군 항공기가 인민군을 공습했고 해가 지면 인민군이 국군을 공격했습니다. 하루에 노무자 50~60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흘내내 전사자 시신을 옮겼고 가장 위험한 임무였던 탄약상자를 고지의 전방까지 운반했습니다. 노동이 너무 고되어 밤마다 흐느껴 울었습니다.”
생생한 증언들이 당시 전쟁의 참상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우리의 전쟁사에서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는 KSC부대의 이야기가 오산에서 펼쳐진 데는 특별한 인연 덕이다.
한국전쟁 중 유엔군이 첫 전투를 벌인 곳으로 알려진 오산 죽미령전투에서 당시 파견된 스미스 부대의 희생이 컸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죽미령을 찾은 스미스 부대원들은 돌탑을 쌓아 희생된 전우를 추모했는데, 그것이 유엔군초전기념비다. 이후 기념비 곁에서 동판 하나가 발견됐다. KSC 마크가 들어간 안내판으로 1972년 9월 21일, 유엔군 초전기념비와 주변을 정비한 후 이곳이 유엔군의 희생이 있었음을 알려둔 것이다. 오산시가 초전기념비를 경기도등록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과정에서 이 안내판을 연구하며 KSC부대의 희생을 알게 됐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과 정을 나누며 평화로운 추석연휴를 보내는 오늘은, 어쩌면 이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의 포화를 견뎌낸 누군가의 희생 덕일지 모른다. 전시는 내년 8월까지 이어진다. 연휴의 하루쯤은 묵묵히 이 땅의 평화를 지킨 이들의 숨은 이야기에 귀기울일 여유가 있다.
오산/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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