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12일 국내 언론이 일제히 보도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전 국민이 심란해졌다.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한 부상을 입은 북한군 포로 2명의 영상이었다. 포로 공개를 계기로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의 실상을 다룬 보도들이 쏟아졌다. 파병 사실도 모른 채 전장의 한복판에 뿌려진 병사들에게 북한은 포로가 되느니 자폭하라는 군령을 내렸다. 국내 송환 여론이 일었고, 국회의원과 언론이 포로들의 한국행 의사를 확인했고, 정부도 움직였다.

북한군 포로 송환은 예고된 대형 뉴스였던 셈이다. 그 뉴스를 젤렌스키가 지난 23일(현지 시각) 유엔총회 연설에서 터트렸다. 세계 각국 대표들 앞에서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 송환 사실을 밝힌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비공개 송환 진행 합의’를 깼다며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비공개 합의’를 부인하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 대통령은 “북한 포로 국내 송환 문제는 외교, 안보, 한반도 정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매우 예민한 의제”라며 “공개로 생길 여러 문제를 생각할 때 비공개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타당했고 그렇게 합의했다”고 비공개 송환 이유를 설명했다. 대통령과 정부의 판단과 결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아쉬운 대목은 남는다. 우크라이나의 비공개 합의 이행을 액면 그대로 믿은 대목이다. 햇수로 5년째 러시아와 전쟁 중인 나라다. 폐허가 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젤렌스키는 유엔 연설에서 북한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왜 북한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목숨을 바쳐야 하나, 그런 세력에게 전쟁하는 법을 배울 시간을 더 줘야 하느냐”고 물었다. “김정은은 그들을 마치 화폐처럼 이용하고 그 대가로 무언가를 얻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향상된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드론 역량을 경고했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막기 위해 북한군 포로를 선전 도구로 활용한 셈이다.

전쟁 중인 나라의 외교와 아닌 나라의 외교 중 어느 쪽이 절박할지는 불문가지다. 합의를 깬 우크라이나 외교에 비해, 악에 바친 우크라이나를 믿은 우리 외교가 너무 순진해 보인다. 외교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순수한 외교는 재앙을 부르는 형용모순이다. 휴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지뢰 폭발로 장병이 희생당하는 나라의 외교가 순진하면 큰 일 난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