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에 걸친 가족 서사 ‘갱更’

뒤늦게 나타난 할아버지 천태

새 시대 가로막는 구시대 권력

죽 먹은 피영, 회복하고 있을까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연극 ‘갱更’(본주 작·연출, 9월2~20일, 두산아트센터 Space111)은 취약성과 회복력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목의 갱(更)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마흔한 살에 조기 갱년기를 맞은 피영이 중심인물이다. 사전은 갱년기(更年期)를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로 풀이하고 있다. 한자 갱(更)은 ‘다시’라는 뜻을 지닌다. 어떤 일이나 문제 따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한다는 뜻의 갱고(更考), 이미 있던 것을 고쳐 새롭게 한다는 뜻의 갱신(更新) 등으로 쓰인다. 다시라는 말을 기준으로 앞뒤를 나누면 서로 다른 두 개가 분리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하나로 이어진 모양을 연상할 수 있다. 이전의 상태보다 이후의 상태가 깊어지거나 진일보한 모양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전과 이후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대 공간은 도시락 업체의 조리실이다. 피영은 학교 급식실 일을 그만두고 도시락 업체를 차렸다. 누구나 짐작하는 이유다. “더러워서 나온 거 아니고, 살려고 나온 거예요.” 하지만 창업이 쉬울 리 없다. 피영의 엄마 금옥도 함께한다. 많은 자영업자가 겪는 그 길을 피영도 걷고 있다. 경영난에 직면한다. 연극은 이 위태로운 순간에 가족사의 에피소드를 또 다른 블록으로 올려놓으며 시작한다.

“만날 거지?” 예순살 엄마 금옥이 피영에게 말한다. 피영의 할아버지 천태 얘기다. 천태는 아주 오래전에 돼지 도축 공장에서 왼팔을 잃었다. 어린 금옥을 버렸다. 예순 살 금옥 앞에 천태가 나타났다. 뒤늦은 산재 보상금 일억삼천만원이 찍힌 통장을 들고 여든두살의 천태가 찾아왔다. 왼팔을 펄럭이면서 조리실에 다녀간 것이다. 졸지에 할아버지가 생겼다. “이걸 받았어?” 일억삼천만원을 집어던질 것인가, 아니면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받아들인 것인가. 그렇게 연극은 삼대에 걸친 가족 서사를 펼치게 된다.

할아버지 천태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돼지가 와 돼지를 먹는 줄 아나?” 천태가 보기에 돼지는 영물이다. “어차피 오래 못 살 것 같으니까 다른 새끼 젖이라도 되라꼬 잡아먹어뿐다 이기야.” 천태가 천륜을 내세우는 걸 보면 새끼돼지 잡아먹는 어미돼지 이야기는 자기변명에 가까워 보인다. 자기를 위해 잡아먹는 게 아니라는 항변인 셈이다. 새끼를 잡아먹는 늙은 암퇘지의 비유는 무척 유명한 얘기다. 제임스 조이스가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비유한 늙은 암퇘지는 식민지 아일랜드였다. 여기에는 젊은 세대를 파멸로 이끄는 낡은 기득권 권력에 대한 환멸이 깔려 있다. 이와 달리 연극에서는 돼지 모티프가 물구나무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자식 잡아먹는 부모 모티프는 신화에서부터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주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와 제우스 이야기이다. 크로노스(시간의 신)는 자식에게 권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자식이 태어날 때마다 산 채로 잡아먹는다. 아내 레아는 절망한다. 막내 제우스만은 살려야 한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제우스가 크로노스에게 구토를 유발하는 약을 먹여 하데스와 포세이돈이 탈출에 성공한다. 제우스가 형제들과 연합하여 크로노스를 죽이고 왕좌를 차지한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으나 새끼를 잡아먹는 암퇘지 이야기와 만나게 되면 공통의 의미를 도출하게 된다.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가로막는 구시대의 권력에 관한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이 이야기가 당대를 비유하는 것이라고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있다면 그 시대는 비극이 분명하다. 연극에서 돼지 모티프가 물구나무서 있는 걸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이그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도 묵고, 이가 없어도 묵고, 뱅이 나도 묵는다 아입니꼬.” 연극이 끝날 무렵 피영은 할아버지 천태와 함께 죽을 나누어 먹는다. 죽은 목숨을 살리는 음식이다. 아기와 노인을 살리는 음식이다. 병자를 보살피고 다시 살리는 음식이다. 생명이 가장 취약한 상태에 놓였을 때 찾게 되는 음식이다. 죽을 먹은 피영은 이제 회복하고 있을까. 연극은 그렇게 암시하는 듯하다.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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