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밥상, 조회수·광고수익 경연장 변질

건강 저당 잡힌 경쟁에 유튜브도 규제 나서

창작자·플랫폼 넘어 시청 감수성도 되짚어야

강희 논설위원
강희 논설위원

곱창 50인분, 방어 10㎏, 라면 20개. 한 사람이 삼켜내는 압도적인 양에 수백만 명의 시선이 꽂힌다. 먹거리가 넘쳐나는 시대, 역설적으로 타인의 밥상을 열심히 관찰한다. ‘먹방’은 이제 글로벌 미디어 지형을 흔드는 현상이 됐다. 2021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mukbang’을 한글 발음대로 등재했다. K팝, K드라마와 나란히 한류의 또 다른 이름이 된 셈이다.

먹방의 뿌리는 2000년대 후반 인터넷 방송 플랫폼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아프리카TV가 먹방 카테고리를 신설했다. 밴쯔, 왕쥬, 더디바 같은 1세대 BJ들이 실시간 소통을 앞세워 독자적 장르로 키워냈다. 이후 무대는 유튜브로 확장됐고 공삼테이블, 햄지, 쯔양 같은 대형 창작자들이 등장했다. 1인 가구 증가와 코로나19 팬데믹이 맞물리면서 먹방은 혼밥러들의 밥친구이자 대리만족의 창구가 됐다.

그러나 소통의 식탁은 자본의 셈법이 지배하는 상업적 과열지대로 변했다. 2020년 불거진 뒷광고와 먹뱉(먹고 뱉기) 의혹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배신감을 남겼다. 소박한 밥상이 조회수와 광고 수익의 경연장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광고와 협찬 사실을 숨기는 관행은 콘텐츠 신뢰성 논란으로 번졌고, 공정거래위원회는 그해 9월 SNS 광고 표시 기준을 강화해 대응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회수는 플랫폼의 냉혹한 생존 법칙이다. 살아남기 위해 일부 창작자는 더 많은 양, 더 매운맛, 더 기괴한 방식을 택한다. 화면 뒤편에 숨겨진 고통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멈추는 순간 잊힌다”는 강박이 이들을 가혹한 노동으로 몰아붙였는지 모른다. 조회수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위장을 고문하는 기이하고 잔혹한 생존 게임이다. 비극의 경고음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중국의 24세 먹방 인플루언서 잉잉은 생전 저칼륨혈증 병력이 알려진 채 지난 8월 사망했다. 앞서 또 다른 중국 스트리머는 10시간 동안 이어진 라이브 먹방 도중 숨졌다. 튀르키예와 필리핀에서도 폭식 영상을 올리던 창작자들이 비만 합병증과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더는 가볍게 즐길 콘텐츠가 아니라 목숨을 담보로 한 노동에 가깝다.

유튜브가 규제에 나서면서 국내 창작자들의 채널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유튜브는 2023년부터 섭식장애를 조장하거나 행동을 모방할 위험이 있는 콘텐츠를 제한하고, 일부 콘텐츠에는 연령 제한을 적용하고 있다. 구독자 44만 명을 보유한 살빼조는 최근 수익 창출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다이어트 유튜버 미소는 영상 339개를 자진 삭제했다. 1천350만 팬덤을 거느린 쯔양마저 추석 연휴 직전 “앞으로 적당히 먹는 유튜버가 되겠다”며 달라진 기류를 의식한 행보를 보였다.

더 많이 삼킬수록 조회수가 치솟고, 조회수가 곧 막대한 부로 환원되던 먹방의 공식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많이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먹방이 제재받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한 섭식 행동을 따라 하게 만드는 콘텐츠는 다르다. 폭식에 기대 몸집을 키워온 창작자에게는 뼈아픈 통보일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저당 잡혀야 생존할 수 있는 경쟁을 끊어내려면 피할 수 없는 조치다. 자신의 위장을 가학적으로 내몰고, 위험한 식습관을 콘텐츠로 만들어 온 이들은 사회적 책임을 되돌아봐야 한다. 대리만족의 흥미와 섭식장애를 부추기는 가학성 사이에 선을 긋는 일은 창작자의 윤리적 책임이다.

물론 규제의 칼날과 창작자의 자정 노력만으로 극단적 먹방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플랫폼의 알고리즘도 창작자의 콘텐츠도 결국 시청자의 욕구를 되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제 몸을 망가뜨리며 선보이는 폭식을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가벼운 유희로 소비해 왔다. 왜곡된 시청 감수성도 이제는 되짚어봐야 한다. 카메라를 켠 것은 창작자였지만, 그 카메라가 꺼지지 못하게 만든 것은 우리의 시선일 수도 있다. 자극적인 수치에 환호하기보다 창작자의 건강과 존엄을 생각하는 성숙한 시청 윤리가 자리 잡을 때, 미디어 생태계는 본래의 건강성을 되찾을 수 있다. ‘얼마나 자극적으로 많이 먹느냐’가 아니라, ‘어떤 콘텐츠로 대중과 오래 호흡할 것인가’를 물어야 할 때다. 먹방은 지금, 진짜 생존을 건 시험대 위에 서 있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