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문 연 온수리 금풍양조장… 인천 등록문화유산 지정

1938년 인천주류품평회 탁주·약주 부문 우등상 받은 강화 술

‘고려 최고의 술꾼’ 이규보가 남긴 술과 함께 본 강도의 음주 풍속

금잔처럼 귀했던 술잔부터 가양주(家釀酒)까지 ‘800년 전통 잇다’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금풍양조장의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우물. 2026.9.28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금풍양조장의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우물. 2026.9.28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인천 강화군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을 꼽으라면 단연 온수리의 금풍양조장이다. 금풍양조장에서 빚어낸 술은 그 맛도 일품이어서 1938년에는 인천주류품평회 탁주·약주 부문에서 우등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또한 양조장 건물과 여러 시설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어 인천광역시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금풍양조장은 강화를 대표하는 술맛을 자랑했던 만큼 1974년 정부의 양조장 통폐합 정책에도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31년에 설립된 금풍양조장은 빚어내는 술뿐만 아니라 곧 100주년을 맞이하는 세월의 깊이만큼이나 깊은 우물 역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우물을 바라보노라면 800년의 세월 속으로 빠져들어 강도(江都) 시기 강화에 살던 고려 사람들은 어떤 술을 마시며 생활했을지 생각에 잠기게 한다.

고려 최고의 술꾼은 이규보였다. 그는 술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처럼 술과 관련한 수많은 시를 남겼다. 이규보가 타계하기 1년 전인 1240년, ‘병을 앓은 뒤 술을 마시다’라는 시를 썼다. 병이 나은 뒤 아침에 한 잔을 들이켰는데, 사람들은 자신에게 병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술이 있냐 없냐는 것부터 물었다는 내용이다. 73세의 나이에 앓고 난 뒤 아침부터 술을 마셨다는 얘기다. 이규보가 평소에 얼마나 술을 즐겼으면 병문안 온 사람들도 그의 병환보다는 술부터 찾았다. 그해에 쓴 ‘밤에 술 거르는 소리를 듣다’는 시에서는 계속해서 내리는 빗소리는 싫증이 나는데, 마셔서 취하는 이로움을 주는 술 거르는 소리는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고 노래했다.

강화군 하점면 점촌에 사는 전복섭 선생은 집에서 부인이 담근 술을 거실에 진열해 놓고 있다. 전 선생 부인께서는 강화에서 나는 인삼이며 열매들만으로 술을 담그고 있다. 2026. 9.27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강화군 하점면 점촌에 사는 전복섭 선생은 집에서 부인이 담근 술을 거실에 진열해 놓고 있다. 전 선생 부인께서는 강화에서 나는 인삼이며 열매들만으로 술을 담그고 있다. 2026. 9.27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이규보는 해장술로 아침에 자주 마셨던 모양인데, ‘묘음(卯飮)’이라는 시도 남겼다. 묘시는 아침 5시부터 7시까지를 일컫는데 이때 술을 마셨는데 그 술을 미치게 하는 광약(狂藥)이라고 칭했다. 그러면서 광약을 마시면 머리가 아픈데 술을 박절하게 못 끊는 것은 쓸쓸한 마음을 달래려는 데 있다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다. 술을 예찬한 작품도 많이 남긴 이규보는 겨울에 마시는 술을 추위를 막아주는 ‘겨울 모자’에 비유하기도 했다.

술이 없는 세상을 생각하지 않은 이규보는 숨지던 해에 이르러야 자신의 음주벽(飮酒癖)을 마(魔)에 비유하며 사람의 창자를 녹이는 독(毒) 중의 마(魔)라면서 본인 스스로 주마(酒魔)에 걸렸다고 인정했다.

자신은 그렇게도 술에 빠져 살았던 이규보는 어린 아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서는 한탄을 했다. ‘아들 삼백(三百)이 술을 마시다’라는 시에서는 나이 어린 아들이 벌써 술을 마신다면서 앞으로 창자가 녹을까 두렵다고 했다. 또 아비의 늘 술 취하는 버릇만은 닮지 않기를 빌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자상감마상배.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자상감마상배.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고려 사람들의 술 문화도 엄청나게 호화스러웠다. 금이나 은으로 술잔을 만들어 마시기도 했으며, 기마병들이 말에 탄 채 마시는 상감청자 잔도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청자상감마상배(靑磁象嵌馬上盃)는 강화전쟁박물관에 가면 그 모형을 볼 수 있다.

이규보의 경우 귤(橘)을 반으로 쪼개서 잔을 만들어 마시기도 했다. ‘귤로 만든 술잔’이란 시에서 이규보는 누런 색깔의 귤 잔을 금잔(金盞)이라 칭하면서 찬란한 보배라고 읊었다.

이규보는 스님들과 술 마신 일도 여러 작품에 담아냈다. 그런데 언젠가는 절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게 국법으로 금하는 일도 있었던 모양이다. 1197년 이규보가 서른 되던 때 쓴 ‘불은사 운공을 찾아갔다가 승가(僧家)에서 술 마심을 국령(國令)으로 금한다는 말을 듣고’란 제목의 시에 보면 한평생 승가에서 술을 많이 마셨는데 앞으로 승가에서 술을 금한다고 한다면서 아쉬워하기도 했다.

궁궐의 왕과 신하들 역시 술에 빠져 지냈던 모양이다. ‘고려사절요’에 보면, 몽골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1259년 2월, 연등절 행사 때 왕과 신하들은 준비한 술이 떨어지도록 많이 마셨다.

요즘에도 강화에서는 술을 빚거나 담그는 가정집이 많다. 강화도의 들과 산에서 나는 인삼이며 각종 열매를 술 담가 먹는 집들이다. 강화에서는 고려의 강도(江都) 시기의 술 담그고 술 먹는 문화가 800년을 이어 내려오고 있다.

강화군 하점면 점촌에 사는 전복섭 선생은 집에서 부인이 담근 술을 거실에 진열해 놓고 있다. 전 선생 부인께서는 강화에서 나는 인삼이며 열매들만으로 술을 담그고 있다. 2026.9.27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강화군 하점면 점촌에 사는 전복섭 선생은 집에서 부인이 담근 술을 거실에 진열해 놓고 있다. 전 선생 부인께서는 강화에서 나는 인삼이며 열매들만으로 술을 담그고 있다. 2026.9.27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