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말자고 새긴 글, 역사 담은 눈이 되다

 

남한산성 현판 ‘수어장대’ 실물 만나

‘원성 축성 400주년’ 원형 유지 의미

수어사 김좌명 등 주조한 무기 재현

무망루 일반공개 내년 6월20일까지

남한산성역사문화관 ‘보이는 수장고’에서 만날 수 있는 수어장대 현판. 2026.9.30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남한산성역사문화관 ‘보이는 수장고’에서 만날 수 있는 수어장대 현판. 2026.9.30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병자호란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으로 확장된 남한산성이 처음 완성된 것은 1926년으로 이때 중심이 된 성곽을 원성이라고 한다. 올해는 남한산성 원성이 축성된 지 4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이에 남한산성역사문화관은 긴 세월동안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장대이자 남한산성의 최고 지휘소인 ‘수어장대’를 중심으로 한 전시 ‘무망無忘, 수어장대에 쌓인 400년’을 준비했다.

‘수어장대’의 수어는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를, 장대는 군사를 지휘하고 성 안을 살피는 군사 시설을 의미한다. 이곳은 ‘무망로’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잊지 말라 또는 잊지 않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스스로 경계하며, 그것을 교훈 삼아 더 나은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다짐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수어장대와 무망로는 남한산성의 정체성이자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수어장대는 기록에 서장대라고 적혀 있는데, 남한산성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전쟁을 마주해야 했던 무거운 사명감으로 이곳에 오른 이들은 청의 요구로 세워진 삼전도비를 마주해야 했다. 숙종·영조·정조의 시와 김만기·김석주·이기진 등 훈련대장과 수어사들이 남긴 시로 아픈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남한산성의 역사를 돌아보게 된다.

매바위에 새긴 수어장대의 이름. 2026.9.30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매바위에 새긴 수어장대의 이름. 2026.9.30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만한 부분 중 하나가 무기와 관련된 것이다. 전시장에서 재현된 무기들은 수어사 김좌명과 승영사찰에서 승군들이 함께 주조한 것으로, 서양인이 표류했을 때 얻은 무기를 녹여 만든 철로 만든 화포 등 육군 박물관과 같이 연구해 새롭게 검토한 내용들이 전시에 반영돼 있다.

무망루를 세운 이기진과 이에 관심을 보인 영조의 이야기, 정조의 기해년 남한산성 행행과 ‘기해주필’ 각석, 수어장대 남동쪽 매바위에 새겨진 ‘수어서대’ 각자 등은 남한산성의 국방 의지를 조명한다. 특히 무망루라고 적혀 있는 현판이 눈에 띄는데, 이는 1972년 수어장대가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된 이후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그 의미가 특별하다.

일제에 의해 남한산성이 훼손될 때에도 원형을 지켰던 수어장대는 광복 이후 남한산성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보수됐고, 사적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며 보존과 정비가 이어졌다. 2012년에는 조선시대 모습에 가깝게 현판을 복원했으며, 2014년 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이어 2021년 수어장대가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승격됐다. 전시의 말미에는 이러한 남한산성의 근현대사를 다루며 400년의 시간 속 수어장대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기록과 자료들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보이는 수장고’에서 연계전시 ‘마지막 붓끝, 수어장대를 새기다’가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수어장대 현판에 누가 언제 무엇이라고 썼는지, 현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궁금증들을 해소할 수 있으며, 그동안 현판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색이 변해왔던 모습들도 새롭게 다가온다.

수어장대 글씨는 조선 후기의 서예가 박주수가 남긴 마지막 작품으로, 당시 수어사였던 박기수의 형인 그가 이 글씨를 완성한 후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 많은 힘과 정성을 들여 써내려갔을 유려한 글씨가 새겨져 있는 실제 현판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인 공간이다.

무망루 현판. 2026.9.30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무망루 현판. 2026.9.30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무망無忘’은 단순히 잊지 않겠다는 뜻에서 머물지 않고 또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래를 대비하자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아픈 역사를 딛고 끊임없이 발전하며, 오늘의 안녕과 내일의 평화를 이뤄나가고자 한 이번 전시는 내년 6월 20일까지 계속된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