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차례 가정폭력을 신고하고 다른 거처로 피신해 있던 아내를 찾아가 살해한 현직 공무원 A씨가 지난 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성남시 분당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오고 있다. 2026.9.3 /연합뉴스
여러 차례 가정폭력을 신고하고 다른 거처로 피신해 있던 아내를 찾아가 살해한 현직 공무원 A씨가 지난 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성남시 분당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오고 있다. 2026.9.3 /연합뉴스

가정폭력 피해자가 정보 유출로 목숨을 잃은 광주 살인사건 이후 제도 개선이 추진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관련 법안을 쏟아내고, 정부 역시 제도 안내 강화에 나섰다. 누군가 참혹한 희생을 치른 뒤에야 움직이는 뒤늦은 각성은 씁쓸하다.

경인일보 단독보도(9월 1일자 인터넷 보도)로 드러난 사건의 전말은 참담하다. 가해 남편이 아내의 은신처 주소를 알게 된 경로는 법원이 보낸 이혼소송 서류였다. 국가기관이 피해자의 생존 좌표를 가해자 손에 쥐여준 셈이다. 여성은 경찰에 여러 차례 신고했고, 접근금지 조치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모든 보호가 서류 한 장 앞에서 무너졌다. 사법 행정의 안일함과 인권 의식 부재가 겹쳐 만든 비극이다. 지난해 7월 민사소송법 개정으로 개인정보를 비공개 처리할 방법이 열려 있었지만, 법은 ‘피해자가 직접 신청해야만 보호해 준다’는 소극적인 틀에 갇혀 있었다. 법을 모르거나 혼자 소송하는 사람에게 그런 제도는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법원과 경찰마저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으니, 사실상 피해자를 사지에 방치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단독] 남편 폭력 피해 거주지 옮긴 여성… 광주서 흉기 피습 사망

[단독] 남편 폭력 피해 거주지 옮긴 여성… 광주서 흉기 피습 사망

광주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여성 1명이 흉기에 찔려 숨진 가운데(1일 인터넷 보도) 이 여성은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가 최근 광주로 이사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배우자의 가정 폭력을 피해 수원시에서 광주시로 거주지를 옮겨왔던 것이다. 1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 여성은 수원
https://www.kyeongin.com/article/1770009

현재 국회에는 민사·가사 소송법 일부 개정 법률안 4건이 잇달아 발의돼 있다. 소송 과정의 개인정보 노출을 막기 위해 법원이 직권으로 보호 조치를 시행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피해자가 알지 못해도 법원이 먼저 살피라는 취지이니 방향은 옳다. 그러나 신청주의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법 개정 이후 1년간 접수된 민사·가사 사건 가운데 소송 당사자의 비공개 신청 건수는 2천197건에 달하지만, 실제로 인용된 비율은 54%에 불과하다. 엄밀한 심사도 필요하겠지만, 신청을 해도 절반 가까이 배척당하는 구조라면 피해자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법 개정으로 ‘법원 직권 보호’를 명시하는 것은 출발점일 뿐이다. 더 중요한 과제는 사법부와 치안 당국 간의 실시간 정보 공유와 입체적인 공조 체계 구축이다. 법원이 비공개한 피해자 정보가 경찰의 신변보호 시스템과 시차 없이 연동되어야 가해자에 대한 물리적 접근 금지 조치가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있다. 무심히 오간 서류 한 장이 한 사람의 마지막 피난처를 지웠다. 피해자를 위협하는 소장이 다시는 송달되어서는 안 된다. 법이 지키지 못한 죽음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