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 물빛 머금은 도자, 50년 깊이 한옥에 스미다
‘신안해저선’ 발굴 계기… 문화유산 17만여점 소장
강진 청자·충효동 분청사기 등 9만여점 연구·전시
기존 본관 건물·주변 환경 고려해 공간계획 차별화
대지 높이 차 적극 수용해 두 개의 플랫폼으로 구성
실내·실외, 과거·현재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설계
확 트인 개방감… 광주건축상 사회공공부문 최우수
1975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신안군 증도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한 어부가 완벽한 형태의 청자 꽃병 등을 건져 올렸다. 수 백년 바닷속에 잠들어 있던 ‘신안해저선’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1323년 중국 닝보(경원)를 출발해 일본으로 향하다 침몰한 이 무역선에는 수많은 도자기를 비롯해 동전 등 생활용품이 실려 있었고, 정부 주도로 본격적인 수중발굴이 진행되면서 모두 2만7천여점의 유물이 인양됐다. 국립광주박물관(관장 최흥선)은 신안 유물을 계기로 지난 1978년 문을 열었다. 현재 신안 유물을 비롯해 광주 신창동 유적 등 광주·전남 지역의 문화유산 17만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광주박물관 건물은 한옥 형태의 외관이 가장 큰 특징이다. 1970년대 후반 관 주도로 건립된 건축물들은 한국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전통 건축 양식을 현대적 재료로 해석하는 조류가 강했고 광주박물관 역시 이 흐름을 따랐다. 서울 63빌딩 등을 설계한 박춘명 건축가의 작품인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바탕으로 한국 목조 건축의 처마 곡선, 웅장한 팔작지붕 등 전통적 요소를 결합해 완성했다. 현재는 본관 건물을 비롯해 연구동(1998), 어린이박물관(2006)이 자리하고 있다.
■ 한옥 형태의 본관, 주변자연과 조화
지난해 12월 국립광주박물관의 미래 비전을 보여줄 새로운 공간이 문을 열었다. 박물관은 지난 2018년부터 지역 대표 문화유산인 도자기를 매개로 한 ‘아시아도자문화 교류의 거점’을 핵심 사업으로 추진해왔고, 4년의 준비 작업을 거쳐 국립광주박물관 도자문화관을 정식 개관했다.
도자문화관은 국립박물관 최초의 도자 전문 전시관으로 강진 고려청자, 광주 충효동 분청사기 등 9만여 점의 소장 도자기를 지속적으로 조사·연구하고 있으며 14세기 동아시아 해양교류사를 읽을 수 있는 세계최대 컬렉션인 ‘신안 해저 출수품’ 2만5천여 점도 소장 중이다.
대지면적 8만3천19㎡, 건축면적 4천241.34㎡, 연면적 7천137.15㎡ 규모인 도자문화관은 지상 2층 건물이다. 1층에는 디지털 아트존을 포함한 3개의 전시실과 도자기 전문 수장고를 두었고 2층에는 석조물 마당, 뮤지엄숍과 카페, 세라믹 스튜디오 등 관람객 편의 시설과 교육 공간을 마련했다.
(주)우리동인건축사사무소, (주)제이유건축사사무소가 공동 설계한 도자문화관은 기존 본관 건물과의 조화 등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진행됐다.
사무소측은 “도자문화관이 들어서는 공간은 1970년대 건립된 한국 전통건축 양식의 본관과 고려시대 강진 청자가마터, 오랜 수목이 함께 자리하며 서로 다른 시간이 공존하는 장소”라며 “도자문화관은 이러한 장소가 품고 있는 시간의 층위를 하나의 건축적 경험으로 엮어내는 데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래된 박물관과 새로운 전시공간, 역사와 일상, 보존과 체험이 서로 연결되는 가운데, 이곳은 시간을 축적하고 공유하는 문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건축은 대지의 높이 차를 적극 수용해 두 개의 플랫폼을 구성했다. 하부층에는 전시와 수장 기능을 중심으로 문화재의 보존과 연구를 담아 전시실과 수장고 등을 배치했고 상부층은 기존 박물관 마당과 연결시켜 관람과 휴식, 교육이 이루어지는 열린 공간으로 계획했다.
서로 다른 높이에서 시작되는 두 공간은 계단 등 수직동선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관람객이 이동하는 과정 속에서 실내와 실외, 과거와 현재를 연속적으로 경험하도록 의도했다.
이 결과 관람객들은 어디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을 마주하며 전시장으로 들어서게 된다. 본관 관람을 마치고 박물관 마당을 가로질러 도자문화관을 찾으면 이건희 컬렉션 41점이 자리한 석조물 마당, 뮤지엄숍과 카페(오픈 예정)를 지나 계단을 통해 전시공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반면 박물관 정문을 통해 바로 도자문화관으로 향하면 화강석 외관의 건물 전체 모습을 보며 개방감이 시선을 사로잡는 중앙홀로 곧바로 들어서게 된다.
■ 신안해저선 유물을 만나다
도자문화관의 핵심인 전시공간은 중앙 홀을 중심으로 상설전시와 기획전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구성했다. 명확한 경계를 두기보다 전시의 흐름과 관람의 리듬에 따라 공간이 확장되고 중첩되도록 계획해 하나의 공간이 다양한 전시 환경을 수용하는 유연성을 갖도록 했다.
상설전시장인 ‘한국 도자전시실:한국 도자기, 1000년’과 ‘신안해저 도자 전시실:바다를 건넌 꿈, 신안해저선’은 유물이라는, 과거의 고고학적 느낌과 현대적 감각을 접목시켜 공간을 구성했다. 두 전시실은 ‘명’과 ‘암’ 컨셉트에 따라 대비적인 분위기로 연출돼 풍성한 관람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신안실에 들어서면 장소를 넓게 활용하며 개방감을 강조한 시원한 레이아웃으로 유물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그밖에 도자기의 질감을 살린 벽면, 세라믹 타일을 활용한 소품, 중간중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창 등 관람객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많다.
‘한국도자 전시실’은 고려의 청자에서 조선의 분청사기·백자에 이르기까지 한국도자 천 년의 역사적 흐름을 체계적으로 조망하는 공간이다. ‘천년의 시간이 빚은 그릇’, ‘독자적 아름다움, 청자’, ‘모두의 그릇, 분청사기와 백자’ 3부로 구성돼있으며 다양한 연출기법과 키오스크, 영상자료를 통해 관람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했다.
신안해저 도자전시실에서는 ‘신안해저선, 꿈을 싣고 항해하다’, ‘최상의 무역품, 도자기’, ‘신안해저 도자기의 문화기호 읽기’를 주제로 모두 7천여점을 전시 중이다.
층고 7m의 넓은 중앙홀은 확 트인 개방감이 인상적인 공간이다. 현재는 전체를 휴게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가변형으로 설계돼 다양한 전시를 진행할 수도 있다. 또 박물관 폐관 후에도 2층 카페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눈길을 끈다.
체험형 공간인 디지털 아트존은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ICT 기술을 접목한 몰입형 미디어 전시실로 길이 60m의 초대형 파노라마 스크린에 송출되는 고해상도 영상과 입체적인 사운드가 어우러져 마치 영상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현재 상영 중인 ‘흙의 기억, 빛으로 피어나다’는 청자·분청사기·백자 등의 도자기와 광주·전남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디지털 아트존 옆 통로의 유리창은 앞으로 개방해 통로와 외부 공간을 확장된 휴게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더불어 10월께 박물관 주 출입구가 도자문화관쪽으로 이전할 계획이어서 인지도와 접근성도 더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도자문화관은 최근 진행된 제 30회 광주건축상에서 사회 공공부문 최우수작으로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박물관 본관의 건축적 맥락과 주변 환경을 존중하면서도 도자문화를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차별화된 공간계획을 구현했다”며 “기존 시설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새로운 문화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했으며 관람객의 이용과 동선을 세심하게 고려해 전시·교육·체험 기능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구성한 점이 돋보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국립광주박물관 정영욱 학예관은 “도자문화관은 전시관람, 교육, 체험, 연구 조사, 휴식이 어우러진 복합문화플랫폼”이라며 “도자기 등 그릇 안에는 우리의 삶이 담겨 있고, 박물관은 역사를 담는 그릇”이라고 말했다.
/광주일보=김미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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