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빵집 사장님 ‘오토바이 사고’

맞은편 오는 이 피하다 다리 부상

그 행동 내가 알던 좋은 사람 다워

이건 ‘아름다운 불운’ 아니었을까

최정화 소설가
최정화 소설가

단골 빵집 사장님이 사고를 당하셨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맞은 편 사람들을 피하려다 다리 부상을 당하셨다고 했다. 세번이나 수술을 해야 한다고, 1년 정도는 아저씨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저씨네 빵은 가격이 저렴했고, 베이커리 빵들에 비하면 어딘가 촌스러웠다. 브라우니는 쫀득한 대신 촉촉했고, 잡곡빵은 시큼하고 눅눅했다. 그래도 아저씨네 빵집에 꾸준히 들렀다. 빵맛 때문이 아니라, 가격이 싸서도 아니라, 아저씨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었다. 늘 푸근하게 웃어주시고, 안부를 나누어 주시고, 한 마디라도 기운나는 말을 해주시려고 노력하셨다. 빵집 앞을 지나가면 기분이 좋았다. 아저씨만 슬쩍 봐도 긴장이 풀리고 웃음이 나왔다.

사고 소식을 듣고, 아저씨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어쩐지 마음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자기가 탄 오토바이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상황에서 타인 대신 자신을 다치게 하는 쪽을 선택한 아저씨가, 내가 알던 굿 베이커리 사장님다웠기 때문이다. 사고라고 해서 모두 같은 사고는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내가 다치고 아프게 된 일을 불운이나 불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게 불운이더라도 그냥 불운을 아닐 것이다.

다른 단어를 꾸며주는 말을 수식어라고 한다. 이 수식어를 잘 사용하면 세상이 정교해지고 제자리를 찾아 아름다워진다. 아저씨의 사고는 아름다운 불운이고, 따뜻한 불행이며, 아프지만 아프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단순하게 사고라고만 생각하면 속상하고 아프기만 할 사건이었지만, 섬세하게 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사건으로 보였다.

모두 자기 앞길 가기에만 바쁜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아저씨의 마음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비록 1년동안이나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고생이 뒤따르더라도 아저씨는 다리를 다치는 대신 소중하고 값진 마음을 잃지 않고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올 추석에는 엄마와 언니, 형부와 함께 세종문화회관에서 연극을 보았다. ‘네이처 오브 포겟팅(Nature of forgetting)’이라는 제목의 실험극이었다. 치매를 앓는 아버지가 딸의 이름을 잊는 대신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빨간 넥타이를 꺼내라고 하면 빨간 드레스를 붙든다. 머릿속에서 현실을 지워버리고 어린 시절, 학창 시절, 신혼 시절로 되돌아가버린다는 내용이었다.

어린이가 되어버린 아버지, 초등학생인 아버지, 결혼식장에서의 젊은 아버지는 다소 혼돈스럽지만 다시 그 시절을 살고 있었다. 의학의 관점에서는 단지 치매일 뿐인 아버지의 머릿속을 훔쳐보는 기분은 흥분되기도 하고 아련해지기도 했다. 현재를 지우고 과거 속에서 산다는 것이 그냥 불행이고 질병이기만 할까? 치매가 노화로 인한 정신적 질병이라고 하더라도 치매에 또 다른 형용사나 부사가 필요한 게 아닐까? 연극을 보면서 단순한 명사의 세계에서 벗어나 세상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얻었다.

명사의 세상은 딱딱하고 단조롭다. 모기는 모기일 뿐이고 책상은 책상일 뿐인 세계는 심심하고 단조롭다. 그럴 땐 수식어가 필요하다. 순수하고 반짝이거나 단단하며 혹은 물렁한 무언가가. 오늘 아침에는 열네 살 고양이 녀석의 털을 쓰다듬다가 너무 감촉이 부드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고양이에게 열넷이라는 고령의 나이를 붙여주면 걱정이 앞서지만 부드럽다는 형용사를 붙여주면 웃음이 나온다. 아버지에게 치매라는 단어를 붙여주면 눈물이 나오지만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 같이 헤매다 보면 사랑스럽고 귀여운 어리광쟁이 소년을 만날 수 있다. 갑자기 닥친 사고 소식에 놀란 마음은 불운과 고통을 먼저 떠올리지만 섬세하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일은 행복에 더 가까워진다.

우리는 자주 언어에 갇힌다. 그 언어를 자기만의 다른 언어로 풀어낸다면 틀지어진 세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또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세상 밖에 또 다른 무언가를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밤에는 빵집 아저씨의 쾌차를 빌었다. 달처럼 둥글고 환한 아저씨의 마음을 내년에는 꼭 다시 만나게 되기를.

/최정화 소설가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