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한복판에서 ‘까치와 호랑이’를 만난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2025)’를 통해 세계인의 친구가 된 서씨와 더피의 먼 조상들이다. 용상의 뒤를 지키던 ‘일월오악도’는 조선 왕실의 기품을 상징한다. ‘인왕제색도’는 벽면을 채운 영상과 소리를 타고 일렁인다. 한국의 박물관에서 유리창 너머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유물들이 세계인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첫 장면이 되었다.
영국박물관이 특별전 ‘한국: 2천년 창의의 여정’을 1일 개막했다. 1984년 ‘한국의 보물’전 이후 42년 만이다. 삼국시대의 정교한 장신구부터 고려청자의 비색, 조선의 은은한 회화와 근현대 미술까지 2천 년을 관통한다. 연간 640만 명이 찾는 영국박물관에서 한국 문화의 한 시대가 아닌 ‘전사(全史)’가 펼쳐진 셈이다. 화제성 하나로는 닿을 수 없는 유구한 궤적이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뮷즈(MU:DS)’ 또한 관람객을 기다린다. 국내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킨 작은 물건들이 세계인의 일상에도 스며들 테다.
세계를 열광시킨 K컬처의 맨 앞줄에는 늘 K팝과 드라마, 영화가 서 있었다. K컬처가 한국을 알게 되는 대문이라면, 문화유산은 K컬처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보여주는 고즈넉한 방과 같다.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오르는 여정이 의미를 더한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말처럼 한국 문화의 본질은 화려한 과장이 아니다. 보는 이의 마음을 다독이는 편안함, 자연을 있는 그대로 품는 절제미, 그리고 인간적인 온기다.
한류의 인기는 세계 1위, 최다 관객, 수출 신기록 같은 눈에 보이는 숫자가 대변해 왔다. 그러나 런던의 전시실에서 외국인들이 마주하는 것은 놀라운 기록이 아니다. 산수화 한 폭, 도자기 하나, 오래된 불상과 민화다. 이름 모를 장인이 물레를 돌려 만든 백자의 유려한 선(線)과 그림 한 폭에 밴 묵향이 ‘진짜 한국’을 말해 준다.
유행은 덧없이 빠르고 소비는 순식간이다. 하지만 고유한 한국 문화에는 세월의 풍화를 견뎌내는 묵직한 힘이 있다. 지금 세계를 매료시키는 K컬처의 생동감은 어느 날 불쑥 솟은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쌓인 한국인의 삶과 미학이 뿌리가 되어 준 덕분이다. K팝이 바깥의 시선을 우리 전통 유산으로 이끄는 길잡이가 되고, 우리 유산은 다시 K컬처의 생명력을 지탱한다. 런던에서 만나는 오롯한 유물들이 K컬처의 뿌리를 증명하고 있다.
/강희 논설위원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