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는 요즘 '혁신'이 화두다. 대통령과 장관의 말에도, 업무보고 내용과 문서 귀퉁이에도 온통 '혁신'이 자리 잡고 있다.
'혁신', 표현은 달랐지만 서정쇄신, 새 역사 창조, 신한국건설, 구조조정, 등 시대와 정권을 거치면서 공공부문의 변화를 요구하는 정권적 요청(?)이 계속돼 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근본적으로 바뀐 건 없다는 게 국민들의 일반적인 평가인 것 같다. 물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친절도, 청렴도 등 자세와 서비스 면에서 전과 너무 달라진 우리 공직사회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아직 국민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변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참여정부도 예외 없이 공직의 혁신을 요구하며 동참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일부는 '정권은 유한하고 공직은 무한하다'라는 금언(?)을 되새기며 '몇 년 만 참자'라고 견디고 있다. 더구나 지진과 같은 지각변동 없이는 뒤집혀지지 않는 '퇴적층 조직문화'가 무언의 태업(怠業)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혁신은 그리 전망이 밝은 편만은 아니다. 그건 우리 공직사회가 외부충격에 대응해온 '생존의 역사'가 경험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경쟁이 없거나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에는 민간처럼 치열한 생존게임이 없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이익(만족)을 남기지 못하고 망하는 기업(조직)이 없으며 적자(불만족)가 나면 봉급이 줄어들 염려도 없다. 경쟁 없는 곳에서는 혁신의 필요성을 그리 절박하게 느끼지 못한다.
둘째, 보상이 없거나 형식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도 그 몫이 제대로 돌아온다고 생각하지 않는 인식이 더 우세하고 위화감이니 조직 융화단결이니 어쩌고 하면서 나눠 먹기식 보상이 계속되는 '의사(Pseudo)평등주의'가 지배하는 한 혁신은 없다.
셋째, 자율이 없거나 제한된 형식적 자율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은 곧 창조이다. 창조는 자율 즉, 자유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공직사회는 아직도 전례가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대접받고 관행이라는 '보이지 않는 관습법'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넥타이와 와이셔츠로 포장된 형식과 겉멋이 공직사회의 대표로 위장하고 타율이 자율이란 이름으로 행세하고 있는 한 혁신이 싹트기는 어렵다.
그래도 바뀌어야 한다. 신념과 아이디어로 반짝이는 인재들이 무서운 조직문화의 틀에 갇혀 몇 년을 지내다 보면 온순한 가축이 돼버리는 현실을 깨부숴야 한다. 삼성이 10년, 30년, 1세기 뒤에 먹고 살 방법을 연구하고 있을 때, 공직은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공직이 국가발전을 리드하고 국민복지를 풍요롭게 만들지는 못해도 적어도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허겁지겁 눈앞에 닥칠 때 변해야겠다고 느끼는 그런 혁신은 이미 늦다. 아무 짝에 소용없을 것 같은 혁신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호뿐인 혁신, 실천 없는 혁신은 공직사회를 또다시 '양치기 소년'으로 만들 뿐이다.
공직의 많은 부분을 일반기업과 경쟁토록 하는 것, 평등이 아닌 능력으로 보상을 주는 것, 강요된 타율이 아닌 자율과 책임 그리고 권한을 가진 조직을 만드는 것, 창의와 아이디어가 꽃피고 채택되는 그런 공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안타깝지만 실패와 성공 확률은 반반이다. 성패의 관건도 대통령이나 국민의 요구가 아니라 바로 공직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김광남 (리서치월드 대표이사)
'혁신'이 어려운 이유, 필요한 이유
입력 2005-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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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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