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읽었던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떠오른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니?' 왕비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되고 싶어 백설공주를 마술의 힘으로 죽이려 했다.
 또 호머의 대서사시에서도 트로이전쟁의 원인은 여신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쟁 때문이었다고 한다.

 동화와 신화 속에서 여자는 언제나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그것으로 사회적 위치가 정해졌다. 우리들의 삶에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없다면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세끼를 먹기 위해 죽도록 일해야 한다면 삶이란 우스꽝스런 유희에 불과해진다.

 미란 우리를 살게 하는 동력이다. 그러나 오늘날 여자의 아름다움은 지성과 능력 그리고 정치적 권력까지도 의미한다.
 단순한 외모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자신감, 능력 그리고 용기가 여자를 아름답게 만드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기에 마음이 텅빈 사람이 아무리 성형수술에 매달려도 그 아름다움에는 광휘가 없다.

 매혹은 완벽함 앞에서는 멀리 도망친다. 오히려 외적인 부족함이 내적인 능력과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뒷받침될 때 이상한 매력이 나타난다.
 어딘가 부족한데 그것이 오히려 멋이 있어 보이는 것이 이상한 매력이다. 매혹은 수치로 계산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누구나 수치에 따라 미인이 된다면 거울이 왜 그렇게 왕비에게 인색하게 굴었겠는가.

 수치를 따라가다 보면 매혹은 오히려 저 멀리 사라진다. 매혹은 닿을 수 없는 것에서 일어나는 고귀한 감흥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과 인위적인 성형이 지나치게 발달하고 우리가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머지않아 인간의 특권인 생명의 존귀함도 사라지고 여인들의 특권이었던 아름다움에 대한 선망도 사라질지 모른다.

 조금 수수하게 먹고, 조금 수수하게 입더라도 마음이 편하고 즐거운 것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 조금 느리면 어떤가. 왜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 잊을 정도로 기계적 수치로 모든 것을 재단하여 우리를 불안한 경쟁으로 밀어붙이는 제도와 보도에서 해방되자.
 한없이 펼쳐진 푸른 산과 들판을 즐기면 왜 안 되는가. 컴퓨터와 휴대폰에 내 소중한 시간을 다 바칠수는 없지 않은가. 휴대폰을 치우고 컴퓨터를 벗어나 들판으로 나가자.

 오랜만에 자가용이 아닌 버스를 타고 멀리서 빙빙 돌아가는 산과 들판을 눈에 한아름 담아두자. 그래서 도시에서 사람들과 일에 시달릴 때마다 산과 들판을 떠올리자.
 황금을 가느다란 옷걸이로 만들어 그 위에 흰 색을 입혀서 밀수하려다가 들켜서 몰수당하지 말고 끝없이 펼쳐진 진짜 황금의 논을 바라보자.
 성형수술로 누구나 똑같아진 여인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진정한 미를 찾아보자.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텔레비전 뉴스에 쌀협상 국회비준 반대 농민대회를 한다는 보도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쌀개방에 대한 반대시위다.
 불안하고 인색해지는 마음을 푸짐하게 만들어 주는 푸른 들판과 황금빛 논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푸른 들판과 산이 점점 개발에 의해 줄어드는데 이제 논의 자리에 콘크리트 건물들이 들어서면 도대체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찾아야 하고 어디에서 평화를 얻어야 할까.

 이제 농촌에까지 폭력과 증오가 번져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무엇보다 슬픈 일이다. 쌀개방에 관련해 정부와 농민들의 충돌, 폭력소요를 매일 바라보며 안타까움은 커져만 간다.
 쌀값을 아끼려다가 더 소중한 것을 잃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며 올 가을 누런 황금들판의 매혹을 오래토록 간직하고 싶다.
/조 성 헌(前 안성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