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목숨의 희생은 참으로 가슴 아프지만, 나머지 피랍자를 45일 만에 무사히 생환시킨 마당에 그 과정상의 방법이나 조건을 가지고 이런저런 말로 비난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불과 며칠전 만하더라도 피랍 후의 상황은 얼마나 암담하고 절망적이었던가. 지난 7월 19일 아프간에서 한국인 23명이 반정부 무장단체 탈레반에 의해 납치당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의 놀라움과 절망을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 탈레반은 처음엔 한국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이에 한국정부가 연내 철군방침을 밝히자 이번에는 탈레반 죄수 23명과 인질의 맞교환을 석방조건으로 내세웠다. 몇 시간 또는 하루 이틀의 시한을 정해놓고 인질 살해의 협박을 되풀이했다. 아프간 정부와 미국의 반응은 냉랭했다. '테러집단과의 협상은 없다'는 그들의 원칙론 앞에 달리 돌파구가 없었다.
탈레반의 총부리 앞에 죽음과 마주하고 있는 인질들의 절망적 표정을 동영상으로 접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때 우리 국민들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사람만 무사히 돌아오게 할 수만 있다면…"하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런 간절한 요망에 부응하고자 정부는 전력을 다했다. 밖으로 알려진 보도만으로도 제반 악조건 속에서 정부가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막상 '전원 석방'의 합의가 발표되자 언론은 곧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입을 모아 탈레반과의 직접 협상을 문제 삼았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을 내세우며 인질을 두 사람이나 살해하는 마당에, 무장단체의 직접 협상 요구를 어떻게 거부할 수 있었겠는가. 수많은 자국민이 무장집단의 총구 앞에 떨고 있는 마당에 테러집단과의 협상금지원칙에 묶여있을 정부가 얼마나 있을까. 사태 해결 전후의 외국 언론의 비난에 대해서 우리 언론이 좀 더 분명히 반론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테러집단과의 협상 불가, 몸값 불가원칙만 준수하고 있다가 우리 형제가 몰살당했다면, 그때 언론은 무어라고 할 것인가. 분명코, '인명이 최우선인데' 운운했을 것이다. 아니면 국제사회의 원칙을 지켰으니 잘했다고 할 것인가. 우리 정부의 선택은 트집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잘 한 일은 잘했다고 인정하는 풍토가 아쉽다.
'연말 철군'카드를 너무 일찍 꺼내서 협상에서의 이점을 놓쳤다고도 한다. 철군 시기는 어차피 계획되어 있던 것이어서 초동단계에서 인명의 안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발표였다. 만일 그와는 달리 탈레반과의 협상에서 한국군의 아프간 철수시기가 결정되었다고 생각해보라. 이야말로 씻을 수 없는 '굴욕'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국정원장의 과잉노출과 과잉홍보에 대해서 잘못을 지적하는 거야 그럴 수도 있지만 '전 게임 몰수'를 하듯이 정부를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 흔히 공과(功過)를 구분해야 한다고 하는데, 공으로 과를 씻을 수 없듯이, 과를 이유로 공 자체를 부정해서도 안된다.
다음 정권을 맡아보고 싶은 정당이나 지도자라면 지금의 국가공직이 바로 다음번의 내(우리) 자리라는 가정을 하고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옳다.
우리는 이번 인질사태를 조성한 탈레반의 비인도적 만행에 대하여 분노한다. 동시에 우리 정부의 해외파병정책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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