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도마리 도마치 근처 334고지에서 국방부ㆍ수도군단ㆍ55사단 합동 유해발굴팀 장병들이 6.25전쟁 전사자 유골을 발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부고속도로 광주나들목을 나와 국도 45호선을타고 팔당 쪽으로 가다 보면 작은 고갯길 하나를 넘어야 한다.

 흔히 도마리 고개라고 불리는 이곳의 지명은 '도마치'.

 한 도공(陶工)이 사람을 괴롭히는 여우의 혼을 누르려고 도자로 말을 만들어 고개에 세웠다고 해 도마치(陶馬峙)로 불리다 도마치(道馬峙)가 됐다는 지명유래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바로 북쪽이 한강이고 인접해 중부ㆍ제2중부고속도와 국도 43ㆍ45호선이 지나가는 교통요충지라는 사실로도 한국전 격전지로 짐작할 수 있다.

 21일부터 도마치 서쪽 고지에서는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이 시작됐다.

 중부고속도로 고가교 밑에서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30여 분을 올라가자 구덩이를 파고 있는 장병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한낮 기온이 31도까지 치솟은 터여서 군복 상의를 벗어도 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발굴 착수 반나절 만에 이곳 334고지 근처 참호터 구덩이에서 사람 뼈로 추정되는 유골 일부가 발견됐다.

 언뜻 보기에 굵은 나뭇가지로 보였지만, 수도군단 유해발굴팀 책임장교인 한대희 소령은 "굵기와 길이를 봐 사람 다리뼈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대칼로 조심스럽게 주변의 검은빛 흙을 긁어내고 한지를 덮었다. 본격적인 발굴에 앞서 유해를 보호하는 과정이다. 유해 발굴 과정은 문화재 발굴과 흡사하다.

 주변 발굴터에서도 전투식량 포장지의 일부로 보이는 유품이 나왔다.

▲ 21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도마리 도마치 근처 334고지에서 국방부ㆍ수도군단ㆍ55사단 합동 유해발굴팀 장병들이 6.25전쟁 전사자 유골을 발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순간, 무전기를 통해 6부 능선 쪽에서 유골이 하나 더 발견됐다는 보고가 전해졌다. 사람 두개골 조각으로 추정되자 주변에 노란 통제선이 둘러졌다.

 도마치 인근 334고지 일대에서는 국방부 유해발굴단과 수도군단 잠정발굴팀, 육군 55사단 장병 등 100여명이 동원돼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병사당 하루 5개 정도의 참호 터를 파니 하루 500여개의 구덩이가 생겨난다. 구덩이를 100개 파야 유해 한 구를 확인할 수 있는 힘든 일이다. 그나마 한 구를 온전히 수습하는 완전 발굴은 어렵고 부분 발굴이 대부분이다.

 한대희 소령은 "지난해 2개월간 5천600개의 참호를 파 한 구를 수습한 적이 있다"면서 "그래도 선배 귀환을 도왔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기억했다.

 올해 경기도 광주지역 유해발굴은 지난 7일부터 시작됐지만, 사전 탐사활동은 이미 2월부터 시작됐다.

 55사단 산성연대 통신기동반장 최병성 상사를 비롯한 탐사팀 7~8명은 광주 일대문형산과 관산, 도마치, 발이산 일대를 수색해 발굴지를 선정했다.

 발굴지 선정에는 우리 전사(戰史) 이외에 중국과 러시아 전사, 참전자와 주민 증언도 참고가 된다.

 광주지역은 1950년 6~7월 개전 초기 한강방어선의 연장선상에서 아군 6사단이 북한군 2사단에 맞서 지연작전을 벌였던 곳이다.

 이어 1951년 1ㆍ4 후퇴 이후인 1월 25일부터 2월 18일까지 유엔군 재반격의 전환점이 된 '썬더볼터 작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당시 미 9사단을 중심으로 미 24사단, 국군 6사단, 영국 27여단, 그리스 대대가중공군 38군 예하 3개 사단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고 한다.

 하지만, 두 전투 모두 전투 결과와 전사자 기록이 없어 유해 발굴도 그만큼 어렵게 진행되고 있다.

▲ 6.25전쟁 발발 61주년을 3일 앞둔 22일 오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속 발굴병이 중동부전선 최전방지역인 강원 양구군 `피의 능선'에서 국군의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피의 능선에서는 1951년 8월18일부터 9월5일까지 국군 5사단과 미 2사단이 북한군 3개 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주간 문형산 일대에서는 유골 11구와 탄피, 전투화창, 전투식량과 같은 유품 380점을 찾았다.

 광주지역에서 오는 7월 말까지 8주간 연인원 6천여명이 투입돼 전사자 유해를 발굴한다.

 발굴된 유해는 현장수습, 임시봉안, 감식, 정밀분석을 거쳐 오는 8월 군단장 주관 합동영결식을 거행한 다음 국립 현충원 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 운구된다.

 운구된 유해는 법의학적 분석과 DNA 시료채취를 통해 유가족 혈액과 비교해 신원을 확인한다.

 55사단은 지난 2년간 이천·광주지역 10곳에서 225구의 유해를 발굴해 국방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발굴 3년차 최병성 상사는 2009년 앵자봉 발굴에서는 70도 경사지를 밧줄을 타고 접근하던 고행과 발굴지 주변에 배수로를 파고 빗속에서 유해를 보호했던 기억을떠올리며 "힘들지만 보람있는 일"이라고 웃었다.

 '나라를 위해 희생된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취지로 2000년부터 시작된 전사자 유해발굴로 4천100여구가 수습됐지만, 아직 13만여 가구가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육군 55사단 산성연대장 박문식 대령은 "국가의 무한책임 의지를 실현하는 성스러운 과정으로 '작업'이라는 용어조차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장병들의 사생관을 확립하고 지역민에게 안보의식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